“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들은 구한말을 소재로 했어요. 역사적 사건들을 사람의 눈이 아닌 동물들의 눈으로 보는 거죠. 이렇게 바라봤을 때 장면들이 새롭지 않을까 했어요.” 서울옥션 강남점에서 11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3년만의 개인전 ‘Instant Landscape-Traveler’로 돌아온 김남표 작가는 관람자들을 과거와 현대가 혼재된 시공간의 여행으로 초대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김남표의 그림은 보는 순간 작은 변화들이 느껴졌다.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섬세한 표현과 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재료인 털의 사용에 있어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과거의 인물들이나 모습들이 작품 속에 함께 공존했다. “털은 사실 오브제라기보다 일종의 제어 장치로 작용해요.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인가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남겨지고 그곳에 털이 들어가요. 시스템 안에 한 요소로 털이 들어가면서 지금은 털뿐만 아니라 여러 재료를 사용하기도 해요.”
그는 2012년 1년 동안 회화 작업을 멀리한 채 여행과 드로잉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무엇인가 자신이 보여주고 작품에 담을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감을 택했다. 선조들의 모습을 그리는 걸 좋아했던 그는 그들의 눈과 마주치는 게 좋았고 대학원 시절 많이 그려왔었다고 한다. 바로 그 시절 관심이 많았던 조선시대 말기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상투를 튼 인물과 광화문 등 그 시대의 시간과 역사를 상징하는 오브제가 등장하는 가운데 한가롭게 풀을 뜯거나 응시하는 얼룩말이 등장한다. 이러한 오브제와 함께 컬러와 흑백의 조화로움은 단순히 잘 그린 그림 그리고 재미있는 그림을 넘어 흥미와 관심을 유발한다. 그는 작업하기 위해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는다. 먼저 그려가면서 상상하며 완성해간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이어지며 작품이 나온다는 얘기다. 삶의 일상도 수십 번, 수백 번 바뀌는데 지금 그리는 그림과 잠시 후 아니 다음날 그리는 그림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면이지만 입체적으로도 보이는 그의 작품은 밝고 화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차분함이 묻어난다. 작업은 캔버스에 파스텔을 이용해 전부 손으로 그리며 그 위에 인조털을 붙여 새로운 시각적 연출을 나타낸다. “올해 가을 서울 부암동 석파정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에요. 그때 제대로 구한말 시대를 선보이고자 해요. 내용도 무거운 소재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잠시 갤러리가 아닌 장소의 변화를 꾀하는 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그는 석파정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재 자신이 선택한 구한말의 세계를 맘껏 펼쳐 보인다는 계획이다. 또한 그곳에서는 캔버스가 아닌 종이나 장지를 이용해 그 공간과 어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작업의 완성을 선보이고자 했다.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