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상미술의 거장,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10월 23일부터 11월 24일까지 부산시 해운대 가나아트 부산에서 진행된다. '부산'은 한국근현대미술의 형성에 있어서,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에 이르는 시대적 위기 속에서 피난처이자 후방기지로서의 지역적 특수성을 지니며, 전국 각지에서 이곳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이 전위적 토양 위에 한국현대미술의 전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는 곳이다. 당시 해군 종군화가단 소속이었던 김환기에 부산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이를 초월하는 나름의 조형적 비전을 찾게 된 곳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환기는 부산 영도 남항동에 있던 화가 이준의 다락방에서 1년 동안 기거하며, 이곳에서 '피난열차', '판잣집', '항아리와 여인', '달과 항아리', '정물'등을 그렸으며, 그 이후로 부산에서 제3회 개인전과 3.1절 기념 전람회 그리고 유영국,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와 함께 신사실파 3회전 등의 다양한 전시를 열었다.
이처럼 한국현대미술의 씨앗이 잉태되었던 부산에서 열리게 된 이번 김환기 특별전에서는 수화의 대표적인 유화와 과슈, 드로잉 등 약 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자신 고유의 한국적인 추상화의 기틀을 완성해가던 1950년대부터 1974년 타계까지의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나타난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상을 조망한다. 부산 피난기에서 서울(1952-1956), 그리고 파리(1956-1959)를 거쳐 다시 서울시기(1959-1963)에 이르는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단순한 형태와 절제된 색채로 그려진 산과 강, 달 등의 자연물과 전통적 모티프의 결합은 추상미술이 갖는 난해함 대신, 친숙함과 따스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한 화면에서 구체적인 대상이 지워지고 선, 점, 면들로 구성되는 순수한 추상을 보여주는 약 10년간의 뉴욕시기(1963-1974)의 작품들은 김환기만의 독특한 시적인 감성을 발산한다. 이번 전시는 전후의 불안하고 거친 시대 상황 속에서 예술이 현실적 체험과 고민의 결과물이 아닌, 한 단계 승화된 경험으로써 김환기 작품에 드러나는 시정신(詩精神)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