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유령팔’처럼 부유하는 가상공간과 현실 그 사이

북서울미술관, ‘패러다임의 전환’ 키워드 전시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8.04.11 17:59:04

'유령팔'전이 열리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1 내부 전경.(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사지가 절단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통증을 느끼는 환각 사지, 환각 현상에서 착안된 ‘유령팔’. 이 유령팔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없다고도 확실히 이야기할 수 없는 가상공간에 빗대어 표현됐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7월 8일까지 ‘유령팔’전을 연다. 전시의 출발점은 가상과 현실 사이 그 사이에 위치한 현재의 우리다.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오늘날 과학기술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암기할 필요가 없고, 포스트 휴먼이 이야기되는 등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의미 없어진, 혼합된 현실이 대두되면서 작가들 또한 과거와는 다른 작업 환경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공간이 또 다른 일상 공간으로 대체되면서,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당연하게 고려됐던 작업실의 유무, 작품 운송 및 보관 등 실제적인 수단과 기존의 작품 제작 방식까지 일상적으로 반복돼 왔던 것들을 재고하게 만들었다”며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8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 형식은 오늘날 창작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번 전시는 이들의 작업 세계에 집중한다”고 덧붙였다.

 

김정태의 '정태와'(앞)와 강정석의 '게임Ⅱ: 사역마. 프리즈(freeze)!를 위한 드로잉'(뒤 벽면)이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유령팔’전은 올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키워드로 내세운 북서울미술관의 네 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맞은 동시대 사람들이 다가올 미래 삶의 변화를 미술을 중심으로 살펴보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

 

참여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그들의 창작 환경의 근간이 된 디지털 기반 아래 ‘계정설정’ ‘비공간성’ ‘신체의 망각과 확장’ 등 구체적인 설정들이 어떻게 작업과 매개해 구현되는지 보여준다.

 

김동희의 '궤도, 이동/복사'는 전시장 이곳저곳에 설치돼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봐야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작업이다.(사진=김금영 기자)

강정석은 전시장을 일종의 게임 속 공간이라고 가정하고 작업을 펼쳤다. ‘게임Ⅱ: 사역마. 프리즈(freeze)!’ 프로젝트는 자신의 캐릭터가 실제 공간에서 전시장까지 도착하는 것이 최종 목표로, 그 과정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작가는 현실 그리고 게임이라는 가상공간 사이의 이질감을 최소화하며 적극적으로 가상공간이 현실에 개입하도록 이끈다.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적 분리가 아닌 조화에 초점을 맞췄다.

 

강정석이 게임으로 가상공간 이야기를 끌어냈다면, 김정태는 자신이 만든 가상세계를 보여준다. 김정태는 이전 작업에서 ‘피코’라는 가상세계를 설계하고 관리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 가상세계가 이어지는데, 새로운 설정을 추가했다. 피코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복사화 된 김정태와 협업을 한다는 맥락이다. 그래서 작품 제목도 ‘정태와’다. 처음엔 주체성을 띠고 관리자로서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던 작가는, 가상세계의 김정태가 실체화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실제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아이러니 또한 보여준다.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가상세계다.

 

현실과 가상 이분법적 분리 아닌
조화와 확장의 가능성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활발하게 올렸던 람한 작가는 '룸 타입' 작품을 전시장으로 가져왔다.(사진=김금영 기자)

주로 환경의 변화와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수행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온 김동희는 이번엔 전시장에 설치돼 있었던 임시 구조물 미디어박스를 치우고 그 뒤에 가려져 있던 벽을 드러냈다. ‘궤도, 이동/복사’는 작가가 스케치업에서 자주 쓰는 툴의 이름이다. 웹상에서는 간단한 클릭 하나로 이동과 복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만, 이것이 현실로 넘어왔을 땐 관람자가 직접 자리를 이동하면서 작품을 봐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거대한 벽면 구조물을 비롯해 복사체가 전시장 이곳저곳에 설치돼 한 위치에서만 보기는 힘들어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위치를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

 

람한 또한 웹상에 존재했던 것이 현실로 넘어왔을 때의 변화에 주목했다. 작가는 평소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그림을 업데이트해 왔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디지털 세계는 작가에게 전시 공간과도 같았다. 그랬던 작가의 작업이 미술관 전시로 옮겨졌다. 웹상에서 작가의 작품을 봤던 관람객들은 모니터를 벗어난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면서 가상공간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김주원, 안초롱으로 이뤄진 사진 듀오가 구성한 '압축과 팽창' 작업 전시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현실에서 가상공간으로 넘어갔을 때 확장의 가능성을 짚은 작업도 있다. 김주원과 안초롱 작가로 구성된 그룹 ‘압축과 팽창’은 실제 생활에서 포착된 현실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을 웹상에 가져갔을 때,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이 제시한 유사 이미지 결과물들을 함께 전시한다. 현실의 압축된 장면, 즉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웹상 이미지 데이터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무한하게 팽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박아람의 ‘콜백’은 가상과 현실 사이 아주 미세한 경계에 주목한다. 미술관 가벽에 가려져 있던 야외 정원을 발견한 작가는 정원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가상공간과도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전시장과 야외 공간을 유리창으로 구분 지었다. 유리창이 매우 투명해 안팎의 풍경을 모두 볼 수 있어 두 공간이 나눠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유리창이라는 미세한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토록 유령팔처럼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한 현실과 가상공간 사이의 이야기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펼쳐진다.

 

박아람의 '콜백'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투명한 유리창으로 인해 전시장 안팎을 모두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큐레이터는 “처음 전시를 준비할 때는 미래에 주목했지만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에 자연스럽게 더 관심이 갔다”며 “태어나면서부터 핸드폰 등 이미 디지털 세상이 익숙한 세대의 창작 환경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본인들이 구축한 창작 환경 속 만든 작품들이 전시 형태로 구현됐을 때 어떤 한계점을 갖고, 오류는 무엇인지, 그러면서도 또 어떤 가능성을 가졌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미래를 가늠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치열한 대화와 과정을 거치고 있는 오늘날을 되돌아보는 전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령팔’전이 전시실1, 프로젝트 갤러리1이 마련된 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동시에 SeMA 소장작품 기획전 ‘잃어버린 세계’가 2층 전시실2에서 열리고 있다. 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이 디지털 시대에서 가상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의 작업을 보여준다면,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 70~80년대 거장의 작품들이 2층에 전시된다.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표현 방식 등 차이점을 발견하고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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