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작가 – 한효석] 목 매달린 백인엔 검정을, 흑인엔 흰색을 칠한 뜻은

4년만의 아트사이드 갤러리 개인전서 부조리 고발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8.10.15 11:16:08

한효석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목만 덩그러니 남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그 반대편으로 가면 상황은 더하다. 목 매달린 두 인물의 조각이 높은 천장에 매달린 채 빙글빙글 돌아간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짜 사람 같은, 금방이라도 발버둥 칠 것 같은 형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런데 이것이 그나마 ‘약해진’ 이미지다.

 

한효석 작가가 4년 만에 아트사이드 갤러리로 돌아왔다. 4년 전 전시에서 작가는 얼굴의 껍질이 벗겨져 시뻘건 내부가 드러난 이미지, 돼지의 사체로 본을 떠서 만든 조각을 선보였다. 특히 실제 크기의 돼지 조각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마치 전시장이 아닌 도살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놀란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기도 했지만 그만큼 한 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함을 남긴 작품이기도 했다.

 

한효석 작가는 자본과 권력, 인종, 생명 등에 관한 문제를 극사실 회화와 설치 조각으로 표현해 왔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리고 이번 개인전 ‘불평등의 균형’에서는 돼지가 사라지고 얌전한(?) 사람들만 남았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강렬하다. 작가는 자본과 권력, 인종, 생명 등에 관한 문제를 다루며 사회 구조적 현상과 모순을 극사실 회화와 설치 조각으로 표현해 왔다. 여기엔 작가가 자라 온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작가의 가족은 오랫동안 미군 기지가 있는 평택에 거주하며 목축업을 했다. 작가가 고등학생일 때 해외에서 값 싼 우유가 수입되고, 사료 값이 폭등하면서 목장은 경영난을 겪었다. 한 해 동안 소가 아홉 마리가 죽었고 기형 송아지까지 태어났는데, 이건 꼭 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소는 작가의 가족에게 생존의 수단이었기에 소의 죽음은 작가의 가족, 즉 인간의 생존 문제와도 직결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대화된 경쟁 구조에 생존의 위협을 느꼈던 이 경험이 돼지 조각상 등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극한의 상황에 놓인 불안한 세대를 표현한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 2’가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이 이야기는 이번 전시에서도 꾸준히 이어진다. 4년 동안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가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자본을 최대의 가치로 두는 무한 경쟁이 만들어낸 현실에서 생존의 문제에 직결해 있다. 지난해 해외에 갔을 때 화려한 건물 앞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텐트를 친 광경을 봤다.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한 저 건물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진 자든 가지지 못한 자든, 지배 계층이든 피지배 계층이든 어느 쪽이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차별만 하면 다 같이 자멸하겠구나 싶었다. 이런 개탄스러운 마음이 작품명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에 드러났다”고 말했다.

 

좁은 단 위에 무려 7명의 조각상이 서 있는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 2’는 보는 사람조차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조각상들의 표정도 우울해 보인다. 작가는 “과거에는 한 번의 실수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정이 파탄나는 게 열에 하나 꼽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옆을 봐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 흔하다. 좁디좁은 곳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이차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다시는 회생 못할 정도로 낭떠러지 끝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의 절규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에는 한효석 작가의 개탄스러운 마음이 담겼다. 막대의 양 끝에 각각 사람의 여러 얼굴들과 돈다발이 걸려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긴 막대 양 끝에 여러 사람의 머리와 돈다발이 매달린 설치 작품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꺼낸다. 작가는 “우리는 자본과 인간의 가치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 살고 있을까? 자본의 지배 권력에 위협받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목적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차별이 만들어낸 또 다른 불편한 현실, 작가는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도 이번 전시에서 꺼냈다. ‘인종 차별 이슈가 한국에서 중요하냐?’는 의견도 있지만, 작가가 성장했던 도시 평택은 미군 기지촌이라 유난히 혼혈인이 많았다고 한다. 어릴 때 혼혈인 아이들이 놀림을 당하거나 돌에 맞는 모습 등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는 작가가 인간과 사회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작가는 인종 차별을 이슈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한효석 작가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작업한다.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는 자본의 지배 권력에 의해 그 존엄성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담았다.(사진=김금영 기자)

‘불평등의 균형(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은 평택 미군 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병사인 백인과 흑인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작가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지인으로, 작가는 이들의 신체를 캐스팅한 뒤 긴 막대 양 끝에 밧줄로 매달아 놓았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은 백인의 신체에는 흑인 피부의 색을, 흑인의 신체에는 백인 피부의 색을 칠했다는 것.

 

작가는 “조각의 모델로 참여한 한 흑인 친구가 아이들과 놀러갔을 때 겪은 일을 말해줬다. 한국 아이들이 자꾸 쳐다보다가 ‘껌둥이’라고 했다고 하더라. 정말 미안하고 창피했다. 그래서 내가 대신 사과했다. 그리고 모든 한국인이 그런 시선을 가진 건 아니라고,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고치기 위해서 작업에 참여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흔쾌히 허락한 이 친구는 나중에 조각의 상반신을 흰색으로 칠해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 친구가 살아오면서 겪어 왔던 차별에 대한 상처가 심연에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 보다 적합할 것이라 판단해 색을 반대로 칠했다”고 말했다.

 

‘불평등의 균형(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은 평택 미군 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병사인 백인과 흑인을 모델로 한 작품으로, 인종 차별 이슈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사진=김금영 기자)

외면만 봤을 땐 한쪽이 백인이고, 다른 한쪽은 흑인이지만 그 내면엔 정반대의 인종이 존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어떤 인종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똑같은 사람으로서 그 존엄성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총체적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바라는 건 바람직한 균형이다. ‘불평등의 균형’이라는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작품명부터 인상적이다. 나체의 한 남성이 양팔을 벌려 수평으로 뻗은 채 서 있는 이 설치 작업은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은 위치에 자리한다. 다른 조각상들은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고 있지만, 이 조각상만큼은 눈을 부릅뜨고 모든 조각상들을 지켜보고 있다.

 

‘불평등의 균형’ 조각의 모델로는 영화 ‘직지코드’(2017)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데이빗 레드먼이 참여했다. 한효석 작가는 “데이빗 레드먼이 인종 문제를 비롯한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작품으로 다루려는 취지에 공감하며 흔쾌히 모델로 참여했다”고 밝혔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조각의 실제 모델은 영화 ‘직지코드’(2017)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데이빗 레드먼이다. 작가는 “데이빗 레드먼이 인종 문제를 비롯해 인류의 근본적인 차별 문제를 작품으로 다루려는 의견을 지지하며 흔쾌히 모델이 돼줬다”고 말했다. 이 작품과 동일한 모델, 유사한 포즈의 작품인 ‘영웅’은 최근 창원시에 브론즈로 영구 소장된 바 있다.

 

작가의 작업은 극사실적이라 “왜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보고 섬뜩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무서웠던 조각상들이 점점 안타까워 보였다. 오히려 현실이 더 잔혹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어?” 싶을 정도로 상식을 넘어서는 수많은 차별 속 힘든 현실을 현대인은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전시장 지하 1층이 적나라한 조각상들로 이뤄진다면 지상 1층 전시장은 분위기가 반전된다. 한효석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회화 ‘완벽한 추상’ 시리즈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포장된 가식적인 웃음보다는 오히려 내면에 자리한 고통의 표정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조각상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마 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보기 불편하다고 하는 건,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런 불편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눈을 돌려선 안 된다. ‘불평등의 균형’처럼 외면하지 말고 끊임없이 바라보며 스스로 경각심을 일깨우자고 작가는 거칠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회화 ‘완벽한 추상’ 시리즈 또한 볼 수 있다. 2002년 ‘트라우마(Trauma)의 묵시(默示)’에 나타난 얼굴의 상처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물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형태를 평면 작업으로 표현하고, 추상적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위의 소산을 극사실적 표현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추상과 구상의 모호한 경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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