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37) ‘수집: A Map of a Man’s Life’] 작가도, 작품도, 관객도 모두 ‘수집’의 결과

다아트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19.12.23 09:10:06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오래된 집’은 오랜 시간을 머금은 공간과 동시대 작가들의 상호작용이 돋보이는 곳이다. 누군가가 이사 나가고 텅 비었던 집은 작가들의 예술적 실험을 위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었다. 2015년 이후 잠시 문을 닫았던 이곳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전시 ‘수집: A Map of a Man’s Life’(2019)와 함께 재개관의 소식을 전해왔다. 전시에 참여한 고재욱, 이완, 정승, 이 세 명은 각각 2017년, 2012년, 2015~2016년에 ‘명륜동 작업실’에 입주해 ‘캔 파운데이션’과 인연을 맺었던 작가들이다.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작업의 과정에 수집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소유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무언가를 모으고 보관한다. 한 사람이 보관하는 물건(혹은 무언가)은 그 사람의 관심과 취향, 나아가 삶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수집품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 이상의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 정확히 알 수 없을지라도 - 선택되어 수집, 보관되기 이전에 그 물건이 보냈던 시간, 누군가의 수집품이 된 이후 그 물건이 보내는 시간의 층이 미묘하게 겹쳐지며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의 수집품은 한 작가의 작업 세계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고재욱 작가는 자신이 수집한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인물의 삶을 추적하고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 개인에서 시작된 삶의 이야기는 무수한 씨실과 날실의 교차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와 공동체의 역사로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역사의 그물망은 자연스레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삶과 연결된다. 노호혼이나 의자, 멀티탭과 같은 오브제가 집적된 설치 작업을 통해 현대인과 현대 사회를 투영했던 정승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수집된 데이터베이스를 3D 프린터로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스페이스 캔’ 정소영 큐레이터에 따르면, 정승 작가는 미디어 아트와 창작 행위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연구를 진행하기에 그의 작업은 과거를 담는 동시에 미래까지도 보여주게 된다.

 

‘오래된 집’ 외관 ⓒ캔 파운데이션(촬영: 김진호)

한편 이완 작가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오래된 집’도 수집품 중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전시에 임했다. 오래된 그 집이 언제 지어졌고, 누가 살았고, 거기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를 추측하다 보면 내가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수집품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거다. 관객들도 나의 작품을 보며 어떤 상징물이 등장하던 시점에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가를 찾아볼 수 있고, 한국이란 사회에서 당시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도 전시된 수집품의 하나라는 상상으로 작품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로그 파일(log file)이다. 나는 사회와 집단의 결정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관객들은 시대적 인과를 거치며 ‘나는 왜 내가 되었는지, 세상은 왜 그러한지’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를 다 본 뒤 집에 돌아가 자신의 과거 흔적이나 앨범을 찾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 전시가 그 사람의 삶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작업했다.”

누구에게 소중했을 물건, 한 순간의 흔적을 담은 사진,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글, 역사를 담아내는 기록물, 이 수집품들은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아내며 예술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또 한 번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어 특별한 기억으로 저장될 것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수집품이 되어 새로운 공간에 놓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작가의 작업실에서 또 다른 수집품과 만나 새로운 의미의 층을 만들어 내는 상징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수집: A Map of a Man’s Life’ 전시 전경, 정승 작가 작업 부분 ⓒ캔 파운데이션(촬영: 김진호)

“작업과정으로서의 수집과, 수집 사이의 소통”
‘캔 파운데이션’ 김성희 기획이사와의 대화


Q. 2010년 오픈한 ‘오래된 집’은 단어 그대로 오래된 집 두 채를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으로 제공했다. 생활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선보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A. 이미 1990년대 후반 일상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파격적인 시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집’은 해당 집을 구매한 분이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면서 시작되었다. ‘스페이스 캔’이 위치한 성북동에는 옛길, 과거의 정취가 느껴지는 가게와 주택들이 많다. 그리고 그 주변은 한국 근대기의 예술가들이 살았던 곳이다.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지역과 공간이라면 예술가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오래된 집’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오버랩되는 독특한 공간이 되었다. ‘오래된 집’에 머물며 작업하고 전시하면서 경험한 공간과의 상호작용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작가들이 많다.
 

고재욱, 작가의 방, 종이, 실, 가변설치, 2019 ⓒ캔 파운데이션(촬영: 김진호)

Q. ‘오래된 집’은 2015년부터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가 이번에 재개관을 했다. 재개관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을 것 같다.

A. 김홍식 작가의 전시 ‘오래된 집 프로젝트 - 틀의 바깥’(2015) 때부터 지붕 일부에 문제가 생겼고, 건물의 안전이 걱정될만한 상황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획자와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이 전시를 끝으로 ‘오래된 집’을 닫게 되었다. 이후 ‘오래된 집’을 되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비영리 공간이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했다. 모든 해결책을 찾는 데에 3년이 걸렸다. 그 과정 중에 건축가와 작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완전히 허물고 새롭게 컨템포러리한 건물을 세워야 한다, 최소한의 보수만 해야 한다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러던 중 ‘파라다이스 집(Paradise ZIP)’을 리모델링 했던 승효상 선생님께 ‘오래된 집’의 재해석을 부탁드렸고, 흔쾌히 재능 기부를 승낙해주셨다. 결과적으로 옛 한옥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성북동에는 이와 유사한 공간이 많다. 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이 열정을 갖고 이런 공간들을 발견해주면 좋겠다.

Q. 재개관전의 주제가 ‘수집: A Map of a Man’s Life’인 이유와 세 명의 작가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A. 개인적으로 수집에 관심이 많다. 수집품은 수집가의 삶 족적을 보여준다. 그런데 작가들 역시 수집을 많이 한다. 여기에서의 수집은 오직 전시를 위해 수집되고 전시가 끝나면 버려지는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들의 수집품은 그들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시에 그들의 인생을 담아낸다. 비단 작가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수집품 역시 그러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고재욱, 이완, 정승 작가는 모두 수집을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집은 보존(보관)과도 연결된다. 결국 ‘오래된 집’도 오래된 공간을 보존한 것이다. 재개관 전시이기 때문에 그동안 ‘캔 파운데이션’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작가 중에서 선택했다.
 

‘수집: A Map of a Man’s Life’ 전시 전경, 이완, ‘취미수집_카테고리_한국의 권력과 정치관련자료_1800s~현재’, 2019 ⓒ캔 파운데이션(촬영: 김진호)

Q. 오늘날 수집과 관련된 작업이 많이 보인다. 수집한 것들을 진열하는 행위에 어떤 예술적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 나아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오래된 집’의 이번 전시와 별개로 수집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작업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A. 분명 작업에서 수집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가 늘었다. 수집품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작가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도 있다. 다른 이의 것들을 수집하다가 작가 자신의 일상적 오브제들에 의미를 부여해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작업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나 소유했던 것들을 가져다가 작가의 끈으로 묶어서 보여주기 때문에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수집만 하는 작업이라면 이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고민 없이 유행을 따라 수집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들의 작품에는 독자적인 관점에 근거한 선별이 부재한다. 그러나 수집이 작업 과정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것은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작가의 관점이 담길 테니까.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왜 하필 이것을 선택했을까? 수집한 것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의 과정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골라낸 것이니 작가의 이야기가 충분히 담길 수 있다.

Q. ‘캔 파운데이션(‘스페이스 캔’, ‘오래된 집’, ‘명륜동 작업실’)’을 거쳐 간 많은 작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을 마주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가, 나아가 미술인에게 가장 필요한 요건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다.

A. 진정성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작가인지, 유행을 좇는 작가인지 구분하려 애쓴다. ‘작가의 인생과 작업이 일치하는가’가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정직하다, 청렴하다’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작가인지를 구별해내는 것이다. 물론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진정성이 있다고 반드시 성공한 유명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기민하게 유행을 따르는 작가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난 뒤 역사는 그것을 구별해낸다. 그렇다고 유행을 몰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라면 현재의 가장 주된 흐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소통의 방식을 연구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인간의 기본 욕구는 소통이다. 그런데 세상을 알아야 소통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현재의 흐름을 알고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 미술사를 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큰 흐름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의 사람들을 통해 오늘의 사람들을 읽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정성의 문제는 ‘캔 파운데이션’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만약 진정성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없었을 거다. ‘캔 파운데이션’의 설립 목표는 작가 지원이다. 그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가들이 우리를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스페이스 캔’과 ‘오래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특히 주목하거나 경험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당연히 많은 관객이 전시를 보러 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된 집’이 예술가들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관객에 예술가들이 많이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날 작가들은 관객이 자신의 작업에 개입해 의미를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소통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나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관객이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예술가들끼리의 소통이 확장된다면 그 상호작용의 영향이 대중에게도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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