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기업] 건축가이자 화가·저자인 임진우의 ‘감성풍경화첩’

정림건축 임진우 대표 인터뷰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20.01.29 11:45:32

정림건축 임진우 대표의 개인전 ‘감성풍경화첩’이 열린 북촌의 일백헌. 사진 = 김금영 기자

북촌의 고풍스러운 한옥에 들어가자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 잘 가던 대학로를 비롯해 좁은 골목길 구석구석 놓인 계단과 국내를 벗어난 곳들까지.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매력을 지닌 평화로운 풍경들이 마음까지 훈훈하게 했다.

정림건축 임진우 대표의 개인전 ‘감성풍경화첩’이 서울 북촌 일백헌 전시장에서 1월 10~22일 열렸다. 임 대표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설계회사 정림건축에서 1986년부터 건축가로서 근무를 시작했고, 2015년부터 단독대표로 취임해 회사를 이끌어 왔다. 같은 해 서울시청홀에서 첫 개인전을 갖고 2015~2019년 연속 서울시 달력 제작에 재능 기부를 하며 화가로서의 활동도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건설관련 일간신문에 매주 ‘건축가의 감성스케치북’ 칼럼을 연재하며 저자로도 이름을 알렸으며, 최근에는 EBS의 ‘예술아 놀자’ 방송에 출연해 엔터테이너로 변신하는 등 활동 범위의 폭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이 다양한 활동의 중심을 이루는 뼈대는 ‘감성’과 ‘풍경’이다. 건축가로서 국내외 다양한 현장을 직접 다닌 그는, 건축물을 비롯한 풍경을 관찰하는 습관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이때 무미건조한 시선이 아닌, 풍경을 바라보며 느낀 벅찬 감성을 담아 건물을 설계하고, 글을 쓰고, 방송에서 이야기를 하며, 펜으로 스케치한다. 이번 개인전 ‘감성풍경화첩’에서도 여러 풍경을 마주한 임 대표의 온화한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스케치는 주변을 관찰하는 사유의 시간”

 

정림건축 임진우 대표. 사진 = 김금영 기자

2015년 서울시청홀에서의 ‘서울화첩’전부터 시작해 2016년 ‘건축가와 함께하는 서울감성풍경’전, 2017년 제7회 한국샐라티스트협회의 ‘두 개의 의자’전, 2017~2020년 ‘감성풍경화첩’전까지, 임 대표는 화가로서 여러 전시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건축회사 수장으로서 일정이 빼곡할 터인데 어지간히 그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힘들 일이다. 임 대표는 어떤 계기로 건축가이자 화가로 발걸음을 내딛었으며, 현재는 어떤 풍경들을 담고 있을까. ‘감성풍경화첩’전 현장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시 공간이 아늑했다. 북촌의 한옥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구조가 흥미를 돋았다. 그래서인지 여타 전시장과 비교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더라. 건축가로서 전시장을 고를 때 시선이 남다를 것 같다.

“의외로 그렇진 않다. 전시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는 편이다. 그림을 파는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공익적 차원에서 전시를 열기 때문이다. 첫 개인전 때도 그랬다. 서울에 정말 아름다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구석구석에 은근히 많다.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화첩’전을 서울시와 함께 마련했다.”

 

‘감성풍경화첩’전은 정림건축 임진우 대표가 서울을 비롯해 국내외 출장을 다니며 마주한 여러 풍경들을 담았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서울시와 함께 제작한 달력도 그 일환인가?

“그렇다. 각 달력마다 장소 테마를 정했다. 서울시 측에서 북촌 홍보를 고민할 때 북촌의 여러 풍경을 담은 달력을 함께 제작했다. 1년 열두 달 사계절의 변화까지 담은 북촌 풍경을 그리는 과정이 만만치 않더라. 하지만 성취감도 보람도 있었다. 첫 달력이 나오고 반응이 좋았고,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한양도성을 알리기 위한 달력도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과 건축 분야와 유관된 점이 많아 또 달력 작업을 이어갔고 현재까지 이르렀다. 지난해에 서촌, 올해는 대학로 풍경을 테마로 그림을 그렸으며, 지금은 내년 달력을 위해 한 해 동안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시점이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무엇이었는가?

“전체적으로는 ‘여행 스케치’가 테마였다. 서촌, 대학로, 한양도성 등 서울 안에서도 주목해서 볼 만한 동네들의 풍경을 모았다. 전시 공간도 활용했다. 양쪽 공간을 이어주는 중심부에 쇼케이스가 있었는데, 양쪽 공간엔 국내 풍경, 쇼케이스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마주한 풍경들을 모았다. 13.5cm 크기의 작은 스케치북과 휴대용 수채화 물감 세트를 항상 갖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놓치기 쉬운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다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쇼케이스 전시 공간에 작품들이 전시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그림을 살펴보면 유명하거나 화려한 고층 빌딩이 아닌 수수한 풍경들이 주로 보였다.

“내 감성을 자극한 곳들이다. 첫 전시 때부터 예전에 일했던 창신동, 이화동, 낙산마을을 비롯해 과거 살았던 정릉동 등 소소한 강북의 풍경들을 자연스럽게 그려왔다. 전봇대, 기와집, 오래된 가스배관, 옹기종기 집들이 얽힌 경사, 좁은 골목, 빨랫줄에 빨래가 널린 소소한 풍경이 내겐 매우 매력적이다. 삶과 연관된, 솔직한 감성을 닮을 수 있는 곳들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다양한 예술 장르 중 특히 스케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건축의 기본 도구이자 정체성이 바로 펜이다. 건축 설계를 할 때 아이디어 구현을 위해 머릿속 이야기를 끄집어내 펜으로 스케치를 한다. 요즘 젊은 건축가들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드로잉을 아주 잘 한다. 내겐 이보다 아날로그 방식이 잘 맞더라. 각자 자기에게 더 맞는 방식을 따라가면 된다.”

 

정림건축 임진우 대표가 여행을 다닐 때 항상 갖고 다니는 휴대용 수채화 물감 세트. 사진 = 김금영 기자

-‘나에게 스케치는 건축적 사유의 도구이자 사물에 대한 애정의 출발’이라는 말을 했다.

“바쁜 가운데 어떻게 그림까지 그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오히려 그림을 그릴 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그림 그리는 시간만큼은 머릿속을 비울 수 있다. 또한 그림 그리는 행위는 건축가로서 미시적·거시적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관심을 갖게 하며,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과 이어진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모두 스케치가 제공해 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예술가가 있는가?

“건축 분야에 집중하다가 화가로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7~8년 전쯤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시를 방문하면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많은 작품 드로잉을 봤는데 충격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으로 분야는 다르지만, 간단한 드로잉에서도 한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굉장한 예술적 힘과 감동을 느꼈다. 그때 ‘왜 난 재능을 발휘하려는 기회를 잡지 않고 손을 놓고 있을까?’란 의문이 들더라. 그날 바로 수채화 물감과 도구를 샀고,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 공부를 다시금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첫 개인전과 서울시 달력 재능 기부까지 꾸준히 그림 그리는 걸 멈추지 않고 이어왔다.”

 

임진우, ‘인왕산’. 30.4 x 22.8cm. 2018. 사진 = 정림건축

-정림건축의 대표이자 화가, 저자, 방송 출연까지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한 분야에 몰두하는 것보다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투자될 텐데.

“한 분야의 전문가로 우뚝 서는 것도 좋지만 요즘은 융복합 시대다. 자신의 잠재영역을 어디까지 펼칠 수 있을지 시험하면서 도전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경우 칼럼을 쓰며 저자, 그림을 그리며 화가, 방송을 하면서 엔터테이너가 되기도 했다. 건축가이자 스케치를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한국샐라티스트협회의 일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건축의 영역을 대중에게 보다 알리고 싶은 목적도 있었다. 이것저것 모두 다 완벽하게 잘 할 수는 없겠지만, 도전하는 행위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방면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리기도 했다. 5년 전 정림회사의 건축가들에게 서울의 이곳저곳 풍경을 담은 그림 또는 사진을 모아서 내자고 제안한 뒤 DDP에서 ‘서울감성풍경’전을 열었다. 건축가가 바라본 서울의 풍경들을 시민과 함께 교감하는 자리였다. 정림건축 50주년 기념으로 그간 설계해 온 대표 건축 50작품을 선별해 출판 및 전시도 선보였다.”
 

임진우, ‘누상동’. 45.4 x 30.5cm. 2018. 사진 = 정림건축

-본래 건축이 아닌 미술에 꿈이 있었다고.

“작은 아버지인 이석 임송희는 한국 산수화의 저변 확대에 힘을 쏟은 동양화계 원로화가이고, 형과 조카도 미술을 전공해 화가, 교수로 활동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림을 접했고, 고등학교 때 미술 서클 활동도 하면서 미술학도를 꿈꿨다. 그 와중 형이 먼저 미대를 진학했고, ‘형제가 둘 다 미대에 가기보다는 다른 길을 택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찾아보니 미술과 건축이 굉장히 큰 접점이 있더라. 건축을 전공할 때 미술을 공부했던 게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됐다. 당시엔 아쉽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다. 건축으로도 꿈을 많이 이뤘고, 뒤늦게나마 전시를 시작해 화가로서의 노선까지 정진하고 있어서 뿌듯하다.”

 

임진우, ‘이화장 입구’. 26 x 36cm. 2019. 사진 = 정림건축

-정림건축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가?

“올해 53주년을 맞은 정림건축에 1986년부터 발을 담갔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중국 롯데월드 선양, 스타필드 하남 등 복합쇼핑몰을 비롯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새병원,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 신관 등의 의료시설, 그리고 인천공항,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주요 기관을 설계했다.

정림건축은 ‘건강한 건축’을 표방한다. 건강한 건축이라는 건 안전성을 기본으로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 등 기능성을 갖춘 가운데 시대적 정신까지 담으며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것이다. 공공 건축에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 건물의 주인은 사람이고, 사람을 사랑해야 설계를 잘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축가는 건강한 건축을 위해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춘 관찰자의 눈을 가져야 한다. 항상 주위를 관찰보고 그 안의 스토리도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대학로의 소소한 풍경들을 담은 작품들. 사진 = 김금영 기자

-스토리를 읽어내는 건축가를 길러내는 데 사내 문화도 한 몫 한 것 같다. 여러 활동이 있는데, 임직원들이 구독하고 작성한 독후감들을 취합해 선보이는 ‘정림 리딩트리 독후감’전이 잘 알려졌다.

“교보문고와 협력한 전시로 2018년 선보였다. 독후감을 통해 임직원들이 서로의 지식과 감성을 공유하면서 한편으로는 공감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관점에서의 생각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기업의 사내 복지 프로그램이 건강한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되기를 바랐다.

또 다른 활동들도 있다. 올해 학습, 취미 동아리 등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꾸린 24개 사내 동아리를 지원한다. 정림건축은 문화재단도 있어서 학술상, 건축학교 등 공공성 있는 일들을 진행해왔다. 사내 바자회를 통해 모은 기금을, 도움이 필요한 기관에 기부하는 매칭 펀드도 운영 중이다. 이밖에 농촌과 도시의 교류 활성화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시골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어 일손을 돕는 1사1촌 운동 등 다양한 문화가 정림건축의 50년 역사와 함께 이어져 왔다. 모든 활동이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는 데 목표를 둔다.”

 

정림건축 임진우 대표의 작품과 방송에 출연했던 영상이 함께 전시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대화를 나누다보니 문화의 힘을 믿고 애정을 쏟고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건축가로서 세계의 많은 도시를 가보고 느낀 점이 있다. 문화 예술을 중시하는 도시는 다 경쟁력이 있다. 인상 깊었던 도시가 덴마크의 오르후스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보다 인구수도 적고 고층빌딩도 별로 없는데 훨씬 파워풀한 느낌을 받았다. 문화 예술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교육 수준과 시스템을 갖췄고, 그 시스템에 맞춰 건축도 이뤄져 있었다.

인문학 열풍이 요즘 전 세계에 돌고 있다. 문화 예술, 그리고 철학의 힘을 깨달은 움직임이다. 헌 건물을 다 부숴버리고 새로 짓는 건만이 발전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잘 활용해 여기서 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삶은 결코 문화 예술과 떨어질 수 없다. 그렇기에 점점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도 내게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마르셀 뒤샹 전시에 갔을 때 유독 젊은 관람객이 줄을 많이 서 있는 모습을 봤다. 중후반 나이에 들어서면서 ‘어떤 문화유산을 만들어 후세에 남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쭉 해왔는데, 문화 예술에 점점 관심을 갖는 젊은 층의 모습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

 

정림건축 임직원들이 구독하고 작성한 독후감들을 취합해 선보인 ‘정림 리딩트리 독후감’전 모습. 사진 = 정림건축

-추후 그려보고 싶은 풍경, 혹은 이미 그려봤지만 다시 그려보고 싶은 풍경이 있다면?

“여행 스케치는 계속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다. 제주도의 이색적인 자연 풍경들, 그랜드캐년의 장엄한 서사적 풍경, 유럽 특유의 르네상스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동화 같은 마을들, 눈이 흩날리는 훗카이도 등 아름다운 감성이 느껴지는 풍경들을 앞으로도 그리고 싶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성경에서 인용한 내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사랑은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건물을 설계하는 것도, 사무실 직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모두 관심, 즉 사랑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여는 게 피곤하기도 하지만 보람과 성취를 느낀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들을 그림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소명 의식도 사랑에서 비롯됐다.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 차원에서 몇 번 전시를 열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며 사람들과 소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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