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62) ‘홍이현숙: 휭, 추-푸’] 소리만 남은 빈 공간이 작품이 되는 순간

다아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21.02.16 17:29:35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홍이현숙: 휭, 추-푸’의 홍이현숙 작가, 전시를 기획한 김미정 큐레이터와 나눈 대화를 싣는다.

- 전시 ‘홍이현숙: 휭, 추-푸’에서 아르코미술관의 1층을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채웠다. 미술 작가로서 시각을 벗어나는 시도를 하게 된 계기와 그 의미는 무엇인가?

홍이현숙: 나의 작업은 대부분 장소특정적이다. 나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을 중시한다. 이번엔 전시장의 빈 공간을 관객과 같이 느껴보고 싶었고, 관객들이 내가 느끼는 것처럼 공간을 체험하게 하려면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 비어있음을 느끼게 하면서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재료는 소리뿐이었다. 또한 이번 전시의 중요한 소재인 고래와 나의 연결고리 역시 소리였다. 그래서 전시장을 소리로 채우게 되었다. 공간을 채우면서도 공간을 인식하게 하는 소리를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했기에 암흑이 아니라 은은한 빛이 공간을 비춰주는 효과도 필요했다. 전시장에 놓인 설치물은 나의 방을 재현한 것으로 바다에서 표류하는 뗏목이나 배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완성된 실체가 아닌 드로잉처럼 얇은 선으로 존재하는 구조물이다.
 

홍이현숙, ‘여덟 마리 등대’, 2020, 전시 전경, 
사진 촬영: 홍철기,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

- 시각을 넘어서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기획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 같다.

김미정 큐레이터: 최근 관객들이 미술관에 기대하는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공간을 비우고 소리로만 채운 전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되기도 했다. 빈 공간을 제시하지만 비워지기만 해도 안 되고, 공간을 소리로 채운다 해도 그저 청음의 공간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러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오늘날의 미술관은 예상 가능하고 익숙한 감각을 환기하는 곳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몰랐던 감각의 영역을 환기해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여덟 마리 등대’(2020)를 들으며 이런 고민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홍이현숙, ‘여덟 마리 등대’, 2020, 스피커 8대(사운드 13분 1초), 가변크기, 사진 촬영: 홍철기,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

- 작가가 밝혔듯이 인간의 언어는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존재)에게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모든 가능성이 열린 고래의 소리를 통해 언어를 습득한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가 동등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와 같은 작업을 진행했는지 이해한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교감을 나누려 노력해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한계가 있으니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동물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받아 쓰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부연 설명을 부탁한다.

홍이현숙: 언감생심,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교감을 나누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고래의 소리를 꼼꼼히 들을수록 고래와 나 사이의 장벽을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해서 그대로 두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의 영역(서식지)을 자기 멋대로 침범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인간은 인공위성이나 내비게이터를 이용해 고래의 먹이인 크릴새우를 잡아들이는데, 고래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새우도 남겨놓지 않는다. 그린피스(Greenpeace)의 활동가들이 그물망에 걸린 고래를 구출하는 영상을 볼 때면 인간의 행위를 반성하게 된다. 아르코미술관 2층 창문에 부착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고래의 소리를 받아썼다. 받아쓰기라는 게 굉장히 일방적이다. 내가 고래의 소리를 받아쓰는 순간 스스로 낮아지는 자세를 갖게 된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교감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서식지를 보존하고, 미세플라스틱을 줄이려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고래 소리를 체득하면 그런 행위를 안 할 것 같다.
 

홍이현숙, ‘석광사 근방’, 2020, 단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45초, 사진 촬영: 홍철기,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

- 너무 커 가늠하기 어렵고, 품에 안을 수도 없고, 계속 놓치게 되는 고래를 다루는 작업은 인간 존재, 세상의 본질, 시간처럼 한정하거나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끝없이 갈구하는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홍이현숙: 끝없이 미끄러지면서도 계속 잡으려고 하는 무언가, 그것은 어떤 존재일 수도 있고 개념일 수도 있다. 인간은 언젠가는 그것을 잡을 수 있겠다, 가까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예술도 인간이 잡을 수 없는 것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만날 수 있게,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홍이현숙: 휭, 추-푸’ 전시 전경, 사진 촬영: 홍철기,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 

- 홍이현숙 작가는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가?

김미정 큐레이터: 1층의 전시 공간이 소리가 중점이 될 거라는 건 명확했다. 그래서 2층에서는 작가에 관한 여태까지의 자료들을 종합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아르코미술관에서 중진 이상의 작가 전시를 기획할 때는 신작을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홍이현숙 작가는 흥미로운 경력이 많았다. 창작자일 뿐 아니라 기획자였으며 공공미술 프로젝트 감독, 그룹 활동도 다수 있었다. 그래서 페미니즘 등의 카테고리 안에 한정할 수 없는 작가라고 생각했고, 다각도로 연구할 수 있는 구성을 선보이고 싶었다. 이에 2층 아카이브를 네 개의 주제 ‘나, 여성, 가족, 공동체’, ‘금성까지 왕복달리기’,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공공미술의 기억’, ‘같이, 나눠, 먹기’로 정리했다. 이러한 전작들을 통해 ‘여덟 마리 등대’와 같은 신작이 나올 수 있었다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홍이현숙: 나는 이번 전시가 급진적이길 원했다. ‘어떻게 하면 전시라는 시스템을 유연하게 더 넓힐 수 있을까?’ 혹은 ‘넓히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전시를 준비했다. 나는 고착된 제도를 어긋나게 하고, 확장할 사명이 작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전시가 열린 지금도 전시장을 둘러보며 다른 경우의 수를 계속 상상하고 있다. 전시장이 나의 학습 장소가 되는 것이다.
 

‘홍이현숙: 휭, 추-푸’ 아카이브 전시 전경, 사진 촬영: 홍철기,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

- 작가에 관한 자료들이 놓인 구조물의 형태가 원형이다. 표면은 인조뱀피로 싸여 있다.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홍이현숙: 끝없이 퍼내는 샘으로서의 우물과 그것에 섭동하는 구렁이를 함께 그리고 싶었다. 우물과 구렁이는 같이 하는 존재이다. 구렁이는 습기가 필요한 동물이라 우물가에 머문다. 과거 구렁이는 영험하며 유연한 존재로 여겨졌다.

- 이번 전시에서는 코로나19로 변한 시대의 미술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도 함께 선보였다. 그중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2020)에서 작가는 마애불의 모습과 촉감 등을 말로 설명하고 있다. 동영상(이미지)만으로도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전달할 수 있는데 굳이 작가의 음성을 넣은 이유가 있는가?

홍이현숙: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에서 본체는 이미지가 아니라 음성이다. 소리만 있으면 집중도가 떨어질 위험이 있어 이미지도 같이 보여주게 되었다. 누구나의 옆에 있는 평범한 사람인 나의 목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매우 가깝게 밀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다.
 

홍이현숙,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 47초, 사진 촬영: 홍철기, 사진 제공: 아르코미술관 

- 작품을 보고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고정된 가치 체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자가 되고, 부유하는 상황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사유를 시도하면서도 시스템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아야 소통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시스템을 벗어나려 해도 결국 시스템 안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 예술이다.

홍이현숙: ‘여덟 마리 등대’에서 고래의 영역을 벗어난 고주파 소리, 즉 고래가 내는 소리이긴 한데 주파가 너무 높아서 다른 고래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려주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전체 소리(13분 1초)에서 한 15초 정도 된다. 엄밀히 말해 이 소리는 들을 수도 없고, 채집할 수도 없다. 소리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 소리가 있고, 누군가가 그것을 들려주려 한다는 것을 인식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르거나 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혹은 시스템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결국 상상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상상해야 한다. 예술가는 경계 밖으로 나갈 수도 있고, 그래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계속 자신의 신호음을 내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 안의 사람들은 시스템을 확장할 책무를 갖는다.
작가가 각자 하나의 섬처럼 떠 있다면 큐레이터는 물밑에서 그 섬들을 연결해주고 섬들이 잘 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미정 큐레이터가 그와 같은 역할을 잘해주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홍이현숙과 김미정의 협업전과 같다.

김미정 큐레이터: 처음에는 고래의 언어를 받아쓰고(‘고래자세’(2018)), 사자의 소리를 내는(‘사자자세’(2017)) 작품을 보며 ‘작가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고래와 대화할 수 없고 사자의 소리와 같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와 대화를 나눌수록 내 시야가 여전히 좁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리를 뛰어넘는 비약적인 상상력을 갖지 않고서는 밖(타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작가는 늘 반복해서 말했다. 작가가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나쁘고 비인간 동물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이분법적 메시지가 아니다. 또한 이 전시가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의 문제만을 논하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배척당하는 모든 존재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우리는 모두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던 공생의 문제를 확장하고 함께 나눌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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