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Shaped Scape', 이영림 작가 인터뷰 “무의식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본다는 것의 과정"

‘본다’는 과정 속에 함께 서 있는 작가, 관객, 그리고 공간의 풍경... 가나아트 나인원, 이영림 개인전 ‘Shaped Scape’

다아트 안용호 기자 2021.11.12 09:37:53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열리고 있는 이영림 개인전 'Shaped Scape'. 사진=가나아트 나인원

2021년 작품 ‘Green Wire’를 마주한 기자가 ‘삶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한켠에 슬픔이 걸려 있는 느낌’이라고 하자, 작가 이영림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는 이 작품은 ‘명랑하게 출발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르게 느끼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은 재료가 나무다 보니 재단이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종이를 잘라서 작업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면 가위로 얇게 잘린 부분들이 생겨요. 그게 책상 위에 깔아놓은 어떤 무늬 위에 자연스럽게 얹힌 거예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죠. 'Green Wire'는 그렇게 출발한 작업입니다.”

Green Wire, 2021, Acrylic on wood and aluminum, 114×132×3㎝. 사진=가나아트 나인원

셰이프트 캔버스란 기존 사각형 캔버스가 아닌 다양한 형태와 모양을 갖춘 캔버스를 말한다.

전시 벽면과 어울림을 위해 사각형을 채택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캔버스를 탈피하면서 회화는 그것을 지배하던 캔버스라는 틀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2년 처음 선보였던 ‘Shaped Canvas’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제작된 신작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전시 제목이 ‘Shaped Scape’이다. 작품이 놓인 자리, 혹은 공간 전체와 작품의 상호작용을 탐구해온 이영림은 ‘Scape’가 은유하듯 각각의 캔버스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캔버스 간의 관계, 그리고 공간과 작품이 함께 자아내는 풍경에 몰입할 것을 제안한다.

“회화라는 장르를 처음 시작하면서 신기했던 게, 멀리서 봤을 때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가까이 가서 보면 굉장한 물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어요. 또 사각형 프레임보다 다각형의 프레임이 그 공간 자체와 주변을 모두 활성화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미술사 안에서 알게 됐죠.”

그의 작업의 많은 부분은 2D와 3D 사이의 어디쯤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작품의 옆면이 중요하고 그 옆에 뭐가 오는지, 어떤 빛이 떨어져 그 작품을 어떻게 보이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페인팅하는 건 작가의 영역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 작업을 특정 공간에 놓았을 때는 그 공간과 작업의 영역이 되죠. 공간에 들어오는 빛, 보는 사람의 각도, 사람마다 키도 다르고 눈높이도 다르고…. 본다는 과정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겁니다.”

미술을 공부하기 전 인지심리학을 전공했던 이영림은, 본다는 것의 과정이 무의식적이면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그에게는 스스로 작품을 완성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작품이 관객의 감각 기관과 인지 과정을 통해 이해되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

Red Stick, 2021, Acrylic on wood, 118 × 122 × 3㎝. 사진=가나아트 나인원

이번에 전시된 ‘Red Stick’을 본 어떤 관객은 스틱이 캔버스를 ‘찌른다’고 말했다. 작가는 ‘기댄다’를 표현했다. “이 작업을 누군가 구매해서 빨간 바를 옆에 기대놓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환영이에요. 바닥에 내려놓아도 저는 괜찮을 거 같아요.”

2021년 작품 ‘Two’ 앞에 선 작가는 작품 설치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업을 벽에 걸면서 45° 정도 기울여 설치했어요. 전시회 도큐먼트 작업을 하면서 사진작가가 그림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이렇게 틀어서 찍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게 더 좋더라고요. 결국, 이 작업은 그 사진작가가 완성한 셈이죠. 이런 우연들이 매우 소중합니다.”

Two, 2021, Acrylic on wood, 139 × 110 × 3㎝(왼쪽), 131 × 110 × 3㎝(오른쪽). 기사 맨 위 전시회 전경 사진처럼 이번 전시에는 약 45° 기울여 설치됐다. 사진=가나아트 나인원

이영림에게 그림자는 중요하다. 두께도 마찬가지다. 작품이 걸릴 때 못의 위치나 간격, 각도도 작업 자체를 달리 보이게 한다. 특히 그의 ‘박스 시리즈’는 작가의 이런 의도를 좀 더 명료하게 표현한다.

작가는 박스 안에 드리울 그림자를 상상하면서 회화적 이미지로 그림자를 그려넣는다. 작품을 걸었을 때 실제 그림자와 작가가 채색한 그림자가 겹쳐 보이거나 똑 떨어질 때도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은 작가가 의도한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번 셰이프트 캔버스 시리즈에서 작가의 의도는 느슨해진다. 작가보다는 관객의 역할이 작품을 완성하는 주요 요소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어떻게 작품을 받아들이고, 각각의 조각들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일단 작품이 전시되는 순간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툭 던져놓는다. 그리고 작품이 스스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제 작업은 일상 속에서 늘 생길 수 있는 시각적 일들입니다. 방에 페인팅을 하나 걸어놓으면 방 전체와 관계를 맺어요. 거기에 화분을 하나 더 들여놓으면 이번에는 화분과 또 조응을 합니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굉장히 무의식적이라서 잘 못 느끼지만 사실은 매우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어요”.

미래에 관한 질문에 이영림 작가는, 낯선 것이 주는 두려움과 신선함을 동시에 손에 들고 저글링을 즐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패널 하나를 칠할 때마다 두려움이 항상 동반되는 걸 느껴요. 자유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워요. 얼마 전 VR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동안 물성에 집중해서 작업을 해왔는데 그 물성을 떠나 작업을 한다는 게 오히려 신선하더라고요.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든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영림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하는 유기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사진=이영림 제공

이영림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2012년 싱가포르 라셀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2008년 싱가포르 래플스 디자인 인스티튜트에서 가구디자인을 공부했다. 미술을 공부하기 전인 2004년 이화여대 심리학과에서 인지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21년 ‘Shaped Scape(가나아트 나인원, 서울)’, 2019년 ‘개인적 구조(가나아트 사운즈, 서울)’, 2015년 ‘Cutting into Different Spaces(스페이스 코튼시드, 싱가포르)’ 등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을 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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