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88) 그래픽디자이너 이윤임] 토종 씨앗 키우며 디자이너의 삶·작품 달라져

다아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22.05.06 14:38:23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다음은 한국 전래 토종 씨앗을 살려가며 그래픽디자이너 작업을 이어가는 이윤임 작가와의 대담이다.

-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디자이너인 동시에 자연을 탐구하며 농사짓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픽디자이너이며 즐거운 놀이로 토종 씨앗 농사를 짓는 9년 차 텃밭 생활자이다.

- 놀이라고 말하기에는 전문성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언제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가? 처음으로 심었던 작물이 무엇인지 기억하는가?

서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다가 경기도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마당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전통 5일장에서 상추, 가지, 고추, 허브 등의 모종을 조금씩 사다가 가볍게 키친 가든(kitchen garden)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토종 씨앗을 만나게 되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토종 씨앗 농사의 재미에 푹 빠졌고 점차 밭을 늘려 대부분의 채소류를 자급하게 되었다. 쌀과 밀 같은 곡류를 제외한 콩, 깨, 고춧가루, 마늘 등의 양념류도 자급하지만, 지금의 밭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이마저도 부모님께서 어린 시절 농사 경험이 있으셨기에 가능했다.

- 모든 일이 그렇지만 농사 규모가 작더라도 할 일이 많다. 생업이 아니라 해도 꾸준히 경작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인데 지속하고 있다. 상황에 맞게 경작할 품목을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귀농이나 귀촌을 염두에 두고 도시를 떠나온 것은 아니었기에 농사를 접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는 농사를 지으며 ‘반농반X’의 삶을 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지만 당장은 농사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즐거움이다. 나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고 있다. 작은 텃밭 농사라도 품목이 다양하면 손이 훨씬 많이 가는데 미세한 씨앗부터 시작해 성장과 채종에 이르는 그 모든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렇게 노지에서 건강하게 자란 제철 채소의 맛을 나누고 싶어 내가 디자인한 책과 함께 가끔 게릴라성 채소꾸러미를 기획하기도 하고 농부 시장 마르쉐@에 판매자로 출점해 소량 판매하기도 한다.
 

알랭 뒤카스, 로맹 메데, 앙젤 페레 마그, 정혜승 역, ‘알랭 뒤카스의 선택, 그린 다이닝 채소, 과일, 곡물, 씨앗 … 비로소 식탁의 주인공이 되다’, PAN n PEN(팬앤펜), 2020, 사진 제공 = 이윤임 
김철성, ‘재래종 토마토’, 사진 제공=이윤임 

- 경작할 품종을 고를 때 시각적인 면도 염두에 두는가? 실제로 수확물을 보면 형태나 색이 참 예쁘고 다채롭다.

품종을 선택할 때 시각적인 면도 고려하지만 우선시 되지는 않는다. 디자이너로서 다른 사람과의 시각 차이가 있어 나만의 다른 예쁨을 발견해 내곤 하는데 그건 재능이기도 하지만 관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연과 가까이 살아오지 않다가 농사를 통해 자연을 접해보니 어린아이처럼 하나하나 관찰하게 되었다. 사실 씨앗부터 애정을 갖고 키우다 보면 예쁘지 않은 채소는 없다.

주위 사람들이 디자이너의 텃밭은 형태나 색깔 등을 고려해 밑그림을 그리고 계획대로 디자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선입견이다. 워낙 계획적인 성향의 사람도 아니고, 자연의 질서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종이에 그린 밑그림과 달리 실제 땅에는 생명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줄을 맞추고 색을 맞춰 심은 작물을 땅벌레가 먹어 사라지기도 하고 땅속에 잠자고 있던 씨앗이 싹을 틔워 예상하지 못했던 식물이 자라나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심은 식물과 자연에서 선물로 온 식물들이 어우러져 자유롭고 조화로운 텃밭이 된다.
 

‘토종이 자란다’ 전시 포스터, 사진 제공=이윤임 
‘토종 전시’, 사진 제공=이윤임

- 이야기를 듣다 보면 농사 관련 커뮤니티에도 참여하는 것 같다. 관련 모임은 어떻게 참여 혹은 결성하게 되었는가?

KBS1에서 방영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배추를 다뤘을 때 이문구 소설가가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고 싶어 쓴 ‘씨도리배추’라는 동시가 소개되었다. 농사를 처음 접했을 때라 토종 씨앗에 대해 잘 몰랐는데도 그 시에서 왠지 모를 뭉클함과 감동이 느껴졌다. 이후 ‘토종이 자란다’라는 페이스북 그룹을 알게 되었고, 토종 씨앗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씨앗으로 맺어진 인연들과 지금까지 8년 넘게 만남을 지속하며 농부 시장 ‘마르쉐@(marcheat)’를 통해 토종 씨앗 나눔과 전시 등을 함께 하고 있다. 또 토종 씨앗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쌈지어린농부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1년간 아이들 농사지도교사로 토종 씨앗 농사 수업을 맡기도 했다. 그때 지역 도시농부들과 인연이 되어 주말농장을 알게 되었는데 전기와 수도 시설이 없는 자연에 의지해 농사짓는 생태 텃밭이었다. 그곳의 회원들과 이어가는 씨앗 공동체인 ‘씨;스터’를 만들어 씨앗에서 다시 씨앗까지 이어가는 다양한 씨앗들의 순환 농사를 2년째 함께 짓고 있다. 씨앗은 오래된 미래이고 자연이 준 선물인 것 같다.
 

‘씨;스터 공동체’, 사진 제공=이윤임

- 평상시에도 생태주의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을 상당히 즐기는 것 같다. 농사를 짓기 이전부터 자연이나 환경에 관심을 가졌는가?


아예 무관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지는 10년 조금 넘었다. 부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식생활에 신경 쓰게 되었는데 때마침 디자인 작업을 했던 도서출판 ‘백년후’에서 출간하는 책들의 주제가 환경과 먹을거리에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지속되고 심화되었다. 나는 첫 번째 독자가 되어 내가 디자인하는 책의 원고를 꼼꼼히 읽는 편이다. 글에서 키워드를 뽑아 글에 맞는 디자인을 하다 보니 내용을 세세히 알게 된다. 처음에는 일상의 먹을거리에 신경을 쓰다가 점점 동물 복지나 환경에 대한 이슈로 관심이 확대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두가 도시를 떠나는 결정을 하는 데에 영향을 준 것 같다.

- 이전에 우리가 입는 옷의 재료가 되는 목화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입는 면 대부분이 GMO이다. 게다가 그 목화를 키우기 위해 다량의 제초제와 살충제가 사용되며 이후 수확 과정에서 고엽제가 사용된다. 그래서 가급적 공정무역 유기농 면 제품을 선택한다거나 헴프(hemp), 리넨(linen), 모시 같은 자연 소재를 택하게 되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생산 과정에서 폐기까지 내 몸과 환경에 해가 덜 되는 게 나의 첫 번째 기준이다. 또 의상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옷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될 수 있으면 새 옷을 사지 않으려 한다.
 

‘참외스피릿’ BI 작업, 농업회사법인 (주)태안발효, 사진 제공 = 이윤임 

- 작업마다 다르겠으나 삶이나 생각이 변하면서 디자인 작업에도 변화가 있었나?

꽤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생태주의적인 제품이나 책의 디자인만을 골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주제의 작업 의뢰가 꾸준히 들어오니 시너지 효과가 있다. 이전에는 전시장이나 도서관 등에서 주로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점점 자연에서 직, 간접적으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늘어난다. 일례로 지금 작업 중인 참외증류소주의 BI(Brand Identity)와 라벨링의 경우 업체 측에서 색이나 형태 등 참외를 직접적으로 시각화하지 않은 디자인을 원했다. 연상 작용을 하다 참외 꽃이 별 모양이라는 데에서 착안해 도형화시켜 BI를 만들었다. 그렇게 별을 주제로 낮에는 칵테일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버전인 낮달, 밤에는 일과를 마치고 진하게 마시는 별밤, 도수에 따라 두 버전의 라벨링 작업을 배리에이션(variation)하고 있다. 내가 만약 참외 농사를 지은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물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장수한, ‘인디커피교과서’, 도서출판 백년후, 2012, 사진 제공 = 이윤임

- 북 디자인의 경우 이미지뿐 아니라 인쇄되는 종이에도 관심을 가질 것 같다.

가급적이면 라미네이팅(lamination, 코팅)을 지양하고 싶은데 유통과정에서 오염이나 파손의 우려가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비코팅이라도 내구성이 좋은 종이나 비목재 종이를 계속 고민하고 실험 중이다. 특히 종이 자체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시각적 완성도가 우선이고 책의 주제에 맞아야 한다. 나는 재료 자체의 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을 미리 염두에 두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환경과 종이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디자인의 폭을 확장시켰다.

 

‘재래종 그린토마토를 이용한 요리’, 요리 = 더그린테이블 김은희 셰프, 사진 촬영 = 김철성, 사진 제공 = 이윤임

-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사진작가와 협업을 진행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토종은 투박하고 못생겼다, 볼품없고 작다는 식의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 SNS를 통해 농사일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김철성 사진작가가 연락을 해왔다. 그전부터 토종 농작물과 그것을 이용한 요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과 토종 씨앗, 농작물, 요리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토종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법 개발에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의 셰프가 참여하고 있다. 씨앗에서 요리까지 이어지려면 사계절을 담는 기록물이어야 하고 2~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씨앗이 대물림되려면 결국 음식으로 밥상에 올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씨앗은 언젠가 도태되고 만다. 토종 씨앗을 지키는 것은 결국 미식 유산을 보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철성, ‘토종 흰당근 꽃’, 사진 제공=이윤임 

- 자연과 환경, 자연 친화, 생태주의 등에 관심이 많은 시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일상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에서도 관련 전시나 행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 모든 이슈가 다 그렇겠지만 - 관심이 높아진 만큼 마치 유행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무게감 있게 고민하는 것만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혹은 홍보를 위해서만 사용되는 경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명을 받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관심조차 없으면 내(인간)가 얼마나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는지, 인간 삶의 대부분이 쓰레기를 배출하는 행위로 이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바쁜 일상에 갇혀 무감각하게 살게 된다. 이슈가 되면 그만큼 여러 통로로 노출이 될 것이고, 조금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슈로만 끝나지 않고 상업적인 그린워시(greenwash)인지 아닌지 본질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대에게 빌려 쓰는 지구니까 환경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고 기업과 국가에서 법적인 규제를 통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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