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트 김금영 기자 2025.02.04 16:41:45
발레리노와 조각가가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눈으로 봤을 땐 다소 강직해 보이지만 손이 닿으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조각으로 형성됐고, 이 조각이 전시된 공간 곳곳에 설치된 작업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상호작용한다.
자신과 바깥 세계와의 거리 사유하는 작업들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가 올해를 여는 첫 전시로 ‘두산아트랩 2025’를 마련했다. 두산아트랩은 두산아트센터가 시각 예술과 공연 예술 부문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2010년부터 진행해온 프로그램이다. 시각 예술 분야는 매년 35세 이하의 작가 5명을 공모로 선정해 단체전의 형태로 소개한다. 그렇게 이번 전시에 고요손, 김유자, 노송희, 장다은, 장영해가 모였다.
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과 태도가 드러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자신과 바깥 세계와의 거리를 사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서로의 작업 세계를 존중, 이해하며 전시장 안에서 각각의 작품이 마치 하나처럼 연결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시는 전시장 바깥에서부터 시작된다. 윈도우 갤러리에 설치된 장다은의 ‘7718’로, 해당 벽면의 바로 안쪽엔 작가의 또 다른 작업인 ‘파랑 커튼’이 설치돼 전시장 안과 밖을 연결한다. 장다은은 표면과 장막이 지닌 개념을 탐구하고, 그 이면 혹은 너머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공간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업을 이어 왔다.
특히 그의 작업엔 반복적으로 ‘막’이라는 구조물이 등장하는데, 이 막은 주로 여닫을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 두 개의 시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저편의 세계에 대한 거리감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7718도 6개의 장막을 통해 작가가 직접 봤거나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수집한 창문에 얽힌 서사를 그린다.
고요손 또한 전시장 안과 밖에서 작업을 펼치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바로 조각이다. 대표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발레리노 전민철과 협업한 ‘전민철, 추운 바람과 모닥불’(2025)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7년 전 한 방송사의 영재 발굴 프로그램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무용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간절히 드러내던 전민철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어느덧 성인으로 자라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을 앞둔 전민철에게 연락해 협업을 제안했다고 한다.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을 연결한 것은 바로 ‘꿈’이다. 꿈은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상징한다. 불면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간절히 찾아오기를 바라는 존재이기도 하다. 휴일도 없이 연습하느라 아무 생각 없이 불꽃을 바라보며 휴식하는 ‘불멍’이 꿈이라는 전민철의 이야기에서 착안해 작은 계단에 앉아 회전하는 모터를 바라볼 수 있는 설치 작업을 마련했다. 또 실제 전민철의 다리를 캐스팅(주물)해 만든 작업엔 열선을 설치해 손을 대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자장가 불러주는 조각’엔 이번 전시에 함께 참여하는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축소시켜 조각의 일부로 포함시켰다. 작가는 “누군가의 숙면을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작가들의 작업을 한데 결합시켜 꿈이 모인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사진·설치·영상·조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작업들
김유자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부드럽게 연결시킨다. 특히 그가 세계에서 관심을 갖는 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연결이다. 필름이 손상되면 해당 필름에 존재했던 세상은 보이지 않으며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데,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세계의 존재들에 주목한다.
김유자의 사진은 고정된 하나의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지 속에 스며 있는 미묘한 움직임과 생동감이 나타나는 걸 발견한다. 이는 인물이 숨을 참거나 내뱉는 찰나,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기척, 또는 무언가 전환되는 듯한 긴장감으로 관객에게 다가오고, 이런 감각은 점차 ‘보이는 것’만큼 선명해진다. 김유자는 이처럼 시각적 경험이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고 확장되는 순간을 통해 사진이 다성적인 감각을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또한 ‘밤 문자’를 통해서는 함께 하는 작가들과 연결된다. 손으로 휘파람을 부르는 듯한 모습이 포착돼 있는 화면은 휘파람을 통해 소환된 대상들이 전시장이라는 한 광장에 모여 각자의 꿈을 들려주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영해와 노송희는 영상 작업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낸다. 먼저 장영해는 인간의 신체가 지닌 물리적 성질과 위치가 사회적 규칙, 기술 환경, 미디어, 즉 세계의 여러 조건과 만났을 때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그 양상을 살펴본다.
‘블러, 블러(blur, blur)’(2025)는 AI(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의 신체 움직임을 뒤섞은 작품이다. 영상 속 춤을 추는 인간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묘하게 삐걱거린다. 24fps(초당 프레임) 영상의 프레임 사이사이에 AI가 만든 영상을 넣었고, 그 결과 댄서의 표정과 몸짓은 순간순간 뒤틀리면서도 언뜻 보면 이어지는 듯한 묘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또한 ‘애니, 코발트(annie, cobalt)’를 통해서는 첨단 미디어와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무뎌지는 신체의 생명력에 주목했다. 코발트광산은 과거 3500여 명의 민간이 학살당한 뼈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장소다. 하지만 현재 이 장소엔 넓은 골프장이 들어섰고, 분명 과거에 존재했던 생명력은 평화로운 필드에 은폐됐다. 이 가운데 작가는 골프채에 공이 맞을 때 나는 ‘딱’ 소리에서 마치 총성이 울리는 듯한 영상을 통해 폭력이 비일상적 충격에서 벗어나 익숙한 환경으로 스며드는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노송희는 유무형의 아카이브와 전시 공간을 재료로 삼아 이를 메타화한 영상을 제작했다. 작가는 전시장을 역사적 겹을 지닌 상징적인 장소로 바라보는 작업을 이어 왔다. 전시장은 작가인 자신이 세상과 소통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산갤러리 공간을 본인의 지난 작업들, 자신의 역사와도 같은 아카이브들을 망라하는 새로운 가상 전시공간으로 전유해 영상에 담았다. 영상은 전시장 입구를 시작으로 또 다른 가상의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곳곳에 배치된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2021), ‘타임 시프팅 박스(Time Shifting Box)’(2022) 등 작가의 지난 영상과 지난해 시청각에서 열린 개인전 ‘디지(Dizzy)’의 기록물들을 경유한다.
실제와 가상의 두 공간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경험은 관객에게 이질적이면서도 하나의 통합된 세계로 다가오며, 과연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통해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또 다른 방식의 아카이브 읽기를 제안한다.
두산갤러리 측은 “다섯 작가가 바라보는 바깥은 타인의 삶이나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 감각 너머의 존재와 현상이 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엔 자신을 둘러싼 가까운 현실이 된다”며 “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외부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 사이를 두드리며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간격을 적극적으로 좁히거나 사이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며, 때로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 그 자체를 작업으로 끌어안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섯 작가는 외부를 감지하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부피와 내용을 포착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다시 우리의 눈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외부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행위는 곧 내면을 비추는 과정으로 이어진다”며 “이번 전시에서 바깥 세계를 감각하며 발생하는 섬세한 진동과 울림을 감지하고, 이를 더 깊이 들여다볼 것을 제안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두산갤러리에서 3월 8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