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트 안용호 기자 2025.07.02 11:57:57
작년 7월, 관장으로 부임한 한정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관장은 사진미술관이 있는 서울 도봉구 창동으로 아예 이사했다. 지난 1년 한 관장은 개관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10년이 걸린 개관의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은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일평균 2천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사진미술관의 시작은 일단 성공적이다. 개관 한 달 후 한 관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개관 후 한 달이 넘었는데, 관람객의 반응은 어떤가요?
“현장 관람객과 온라인 반응을 보면 ‘이렇게 귀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기쁘다’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일 관람객 2~3천 명 대의 미술관은 특정 연령에 쏠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어르신들부터 아이들까지 관람객층이 다양합니다. 특히 어르신들은 옛 사진 속 이야기에 집중하십니다. ‘젊었을 적 명동은 저랬지’ 하시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매개체로 사진을 감상하시더라고요. 창동에 처음 와보는 분들도 있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습니다.”
-소장 작품과 자료가 2만여 점이 넘습니다. 컬렉션 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수집은 건립을 준비하면서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진행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학예사분들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국립현대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예술의전당까지 사진 컬렉션이 있는 곳들을 일차적으로 조사하고, 188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신문이나 출판물, 전시 리플렛이 나와 있던 옛 잡지를 다 뒤져서 국내에서 전시회로 소개되었던 작가 2천 명 정도의 목록을 뽑았습니다. 그중 1순위 작가 200명을 다시 선정해 집중적으로 접촉했습니다. 동시에 미술관의 소장품 수집 방향 수립과 한 세기를 뛰어넘는 한국 사진사 체계화에 기여를 목표로 한 한국 사진 관련 연구도 심층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1920~90년대까지 제작된 한국 사진의 걸작들과 관련 자료 2만여 건을 수집할 수 있었어요.”
-작고한 작가의 경우 유족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을 잘 모르는 분들도 계셨는데, 사진은 필름이 중요하니 필름은 못 주고 프린트만 가져가라는 분들도 있었어요. 절차에 따라 기증을 받거나 구매를 한 경우에도, 다음 달에 전시해야 하니 다시 돌려달라는 얘기도 들었고요. 기증이나 구매 절차가 끝나면 소유에 대한 권한은 미술관으로 넘어오고 다만 저작권만 유족에게 있습니다. 미술관이 작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기본 500년은 가져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조적으로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정리하지 못하고 없어질 수도 있어 늘 불안했는데 기증하게 되어 기쁘다는 유족들도 많았습니다. 좋은 환경 안에서 계속 보존할 수 있도록 공공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저희의 말이 유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건립 준비 과정에서 공공성과 실천적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사전 프로그램을 네 차례나 개최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 사립 미술관이 아니기 때문에, 공론화가 필요했습니다. 세미나 형식으로 개최된 1차 '(불)완전한 미술관〉(2021)'은 미술관의 건축, 수집, 전시, 교육, 연구의 흐름을 대중과 공유하고 향후 운영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2차 '정착세계(2022)'는 사진의 기록성과 예술성을 중심으로, 한국 사진사의 흐름과 사진-미술관의 관계를 조명한 전시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였죠. 3차 '포트폴리오, 서울(2023)'은 신진 사진작가를 위한 포트폴리오 리뷰, 전시, 스튜디오 탐방 등을 포함한 창작자 지원 형 교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 미술관의 공공성과 창작 지원 기능을 강조했습니다.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국제 세미나 형태로 진행한 4차 '사진의 자리'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과 같이 개관을 앞둔 해외 사진 전문 미술관과 문화예술 기관을 초청하여 각 기관들의 운영 계획을 공유하고 향후 국내외 사진가들의 교류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건축물로서 사진미술관의 예술성이 돋보입니다. 건축 얘기를 좀 더 해주시겠어요.
“미적인 부분을 보면 밖에서 봤을 때, 마치 카메라 조리개가 열렸다가 닫히는 모습에 착안했다고 합니다. 건축가는 전체적으로 보면 사진의 어떤 요소들을 건축적으로 풀어낸 공간이라고 얘기를 하세요. 컬러를 보면 미술관 안 컬러는 블랙이고 외관의 경우 밖에서 봤을 때 시간에 따라 조금씩 색이 달리 보입니다. 사진은 결국 빛의 예술인데요. 건물의 외관 색과 반짝임이 시간과 빛에 따라 달라집니다.
건물 내부 공간들도 블랙 컬러 외에도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갖고 있는 어떤 반짝임을 보여주면서 사진을 건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인테리어를 진행을 할 때는 블랙앤화이트에 조금 가까웠다면 사진의 요소들 프레임이라든가 조리개라든가 RGB 컬러 같은 요소에 착안해서 사진을 좀 더 느낄 수 있도록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역할을 공공성과 예술성으로 나눠 보자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나요.
“제가 합류한 후 지향점을 잡고 운영 방향을 잡을 때 고민을 많이 했던 두 축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차적으로 공공을 위한 공립미술관이라는 개념을 먼저 가지고 가야 하는 건 맞습니다. 이곳은 사진 박물관이 아니고 사진 미술관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매체입니다. 이 친숙한 매체 안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고민했을 때, 사진이라는 매체 안에 담긴 예술적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세대는 이미지 세대입니다. 이미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그 핵심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의 예술성뿐만 아니라 영향력을 경험할 기회를 많이 만들려 합니다. 열린 미술관으로서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실험적인 전시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예술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우리 미술관 같은 경우에는 공립미술관이기 때문에 한국 사진 예술사의 체계화와 동시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도 같이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공유해 많은 분이 사진을 여러 시각으로 다채롭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광채: 시작의 순간들’과 ‘스토리지 스토리’ 두 전시는 첫 전시로서 각각 어떤 의미를 갖나요?
“개관전은 우리가 앞으로 지향하는 전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광채 光彩 : 시작의 순간들’은 꾸준하고 집요하게 진행된 10년간의 사진 미술관 건립 준비과정에서 수집된 소장품과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빛(光)의 그림 사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다각도로 조명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수집한 소장품 중 한국 예술 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작가들인 정해창, 임석제, 이형록, 조현두, 박영숙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인데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한국에 사진술이 도입된 시기부터 20세기 말까지 100여 년 사이에 활동했던 사진가들을 조사해 목록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192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제작된 작품과 관련 자료 2만여 건을 수집하여 총 26명의 사진가 컬렉션을 구축했습니다. ‘광채 光彩: 시작의 순간들’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소장품을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이자, 한국 예술사진의 기원과 한국사진의 미학적, 이론적 발전 양상을 확인 할 수 있는 전시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하나의 개관 특별전 《스토리지 스토리》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담은 전시로,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미술관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다각적으로 탐구합니다. 건립 과정을 보여주되 틀에 박힌 건립 전시가 아니라 다양한 시도가 있고, 사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대 작가의 전시로 기획했습니다.
사진을 매개로 활발히 활동하는 6인의 작가 원성원, 서동신, 오주영, 정멜멜, 정지현, 주용성은 각기 다른 시선과 감각을 활용하여 사진의 기록적 특성과 예술적 재해석을 넘나들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건립을 주제로 동시대 사진 매체의 변화와 확장성을 실험한 커미션 작업들을 선보입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공간과 건축, 아카이브와 역사, 장소와 기억이라는 개념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들은 미술관을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보존의 장소’, ‘생성의 장소’, ‘기억의 장소’로 재정의합니다. 특히 창동 ‘녹천대감’을 소개하는 전시는 지역사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부분이죠.”
- 마지막으로, 앞으로 전시는 어떤 것에 집중해 진행할 예정인가요?
“3년 치 중장기 계획을 세워놨습니다. 소장품 기획전, 동시대 사진작가를 조명하는 동시대 사진 조명전, 대중의 사진에 대한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마스터 걸작전을 균형감 있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국내외 작가들 사이의 밸런스도 맞추겠습니다. 또한 신진 작가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전시도 기획하겠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이 2년에 한 번씩 열어온 사진 축제도 저희가 가져오려 합니다. 기존의 축제를 좀 더 재정비해서 시민이 함께 호흡하고 참여할 수 있는 주제와 프로그램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전시뿐만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부터 시니어, 지역 주민, 전문인까지 다양한 나이와 관심사를 가진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특색 있는 활동을 기획해 즐겁게 사진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선물할 예정입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