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전시 - 복행술] 혐오의 ‘키워드’화 벗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

케이크 갤러리에서 11월 17일~12월 11일 전시

다아트 윤하나 기자 2016.11.18 17:29:45

정희승, '텐더 버튼스의 '무제' ('Untitled' from Tender Buttons)'.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2016. (사진 = 케이크 갤러리)

 

톡 쏘듯 속 시원한 말을 요즘엔 '사이다'라고 부른다.  누군가 내 답답한 심경을 에두르지 않고 몇 마디 말로 직언하면 "사이다 들이킨 줄" "OOO의 사이다 발언" 등의 첨언과 함께 온라인의 바다에 금새 전파되곤 한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전 세계는 충격과 혼란에 잠식됐고, 그의 원색적이고 폭력적인 혐오발언이 숨어있던 다수의 누군가(샤이 트럼프)에게 '사이다였다는 사실도 덩달아 드러났다.

 

질문이 사라진 시대, “미술로 이야기 만들어내는 힘 찾아야

조은비 독립 큐레이터가 기획한 복행술(The art of not landing)'은 사물의 본질과 사건의 진상은 실종되고, 압축된 키워드와 수사, 선동만이 남은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복행은 항공기가 착륙 직전에 행로를 뒤집어 다시 날아오르는 조작을 의미한다. 조 큐레이터는 이 전시에서 안착하지 않고 우회하는 기술이란 의미로 복행술이란 조어를 만들었다. 언어 권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혐오의 시대에 복행술을 통해 미술이 지닌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터넷 및 SNS 의존도가 높아진 요즘, 말은 생산되기가 무섭게 빨리 유포되고 전파된다. 조 큐레이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장은 짧아지고, 단어는 우물가()’를 맴도는 시대다. 완전한 문장보다 파편적인 단어가 더 많은 검색 결과를 이끌 듯, 이런 언어 분절화 현상은 SNS 해쉬태그 현상부터 뉴스 제목, 나아가 대통령의 연설(박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연설을 예로 들 수 있다)에까지 미치고 있다. 자극적으로 재단된 짧은 말들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범람하면서, 결국엔 단순하고 획일화된 사고로 향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제, '웃는 여자'. 193.5 x 130cm. 2010. (사진 = 케이크 갤러리)

 

“OO, OO충과 같은 언어적 낙인,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몇 개의 키워드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환원이며 본질적인 실종이다. 대상과 사건을 환원, 편견, 혐오와 같은 언어적 손때가 묻어있는 하나의 키워드로 대체해 그 이면을 쉽게 망각으로 이끈다.” 짧고 단순한 몇 가지의 키워드로 인해 애초의 질문은 시간과 함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질문이 사라져버린 지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야기를 만들어야하는 때이기도 하다. 조 기획자는 미술에서도 되풀이되는 수사에서 벗어나 이야기 만들어내는 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이 전시는 이렇게 키워드에 흡착해버려 그 이면에 숨어버리는 진실, 또는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다. 이를 위해 각 작업을 설명하는 명료한 키워드는 배제하고, 본래의 미술 언어를 드러내며 불투명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럼으로써 복행술을 통해 어떤 언어에 안착하지 않고, 기표와 기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함으로써 말의 어리석음 또는 오류를 포착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는 일식을 육안으로 관찰하기 위해 필름으로 눈앞을 가리듯, 때론 키워드와 대상 사이에 얇은 '막(veil)'을 둬서 무언가를 직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황학동에 위치한 케이크 갤러리에는 작가 5인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복행술' 전시 광경. 이미래의 키네틱 작품 '뼈가 있는 것의 케이크 갤러리 운동' 뒤로 정희승의 사진 '텐더 버튼스의 '무제' ('Untitled' from Tender Buttons)'가 보인다. (사진 = 정희승)

 

낯설고 모호하기에 질문할 수 있는 달의 이면

우선 정희승의 사진 작업에서 복행술의 묘미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다. 그의 정물 사진을 보면 사진 속 사물인 가위나 벌집, 나무보다 사진이 그 자체의 조형성과 더불어 화면 너머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텐더 버튼스(Tender buttons)' 시리즈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1914년 발표한 동명의 책에서 작품 제목을 가져왔다. 스타인의 글은 뚜렷한 주제나 내용을 포착하기 어렵지만 언어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평범한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습관적 방식을 새롭게 한다. 정희승의 사진도 상투성을 벗어나 모호하고 낯선 감각을 촉발시킨다.

 

전시장 입구를 통과하는 즉시 기묘하게 움직이는 이미래의 키네틱 작업 2점과 마주칠 수 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철골 구조물 뼈가 있는 것유토를 입힌 형태다. 이 작품은 풀리지 않는 무언가에 '살(피부)'을 입히고 물리적 운동감을 줘, (풀리지 않아) 답답한 감정적 상태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모습을 고안한 것이다. 한 점은 전시장의 벽과 천장에 닿을 듯이 긴 팔을 회전시키며, 또 다른 한 점은 자전거 바퀴를 구르듯 움직이며 전시 공간에 소리를 유입한다.

 

김영글의 비디오 작품 해마 찾기는 사라진 해마를 찾는 과정에서 해마에 대한 반복적인 묘사를 통해 종국에는 해마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해마는 인간의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관이면서 동시에 바다 생물 해마를 지시하기도 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개인적인, 또는 역사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집단적 망각과 퇴행의 징후들을 우화적으로 드러내며, 오늘날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양준화+이준용의 오브제

 

이제의 그림은 도상이 오랫동안 간직하던 전형성을 훌쩍 벗어던진다. 작가는 치열한 개발 이면의 폭력과 분노를 주로 내포하던 도시 개발 현장의 폐허 더미에서 생명을 잉태한 부푼 배를 상상한다.(‘더미’) 마찬가지로 임신한 여성의 초상 웃는 여자에서 그는 성스럽고 희망찬 기쁨의 이미지보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심리를 서늘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정희승의 벌집 사진과 웃는 여자가 걸린 방 한 구석에는 그가 흙으로 빚어 만든 다양한 크기의 과 나무들이 쌓여있다. 신작 공생 연구는 앞서 설명한 두 점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부풀어 있는 둥근 형태를 통해 전형성을 벗어난 채 작가가 가진 원형적 이미지를 표현한다.

 

양윤화+이준용은 이번 전시에서 독특한 협업을 진행했다. (작품 제목과 동일한) ‘무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이메일을 교환하며, 첫 서신의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도려내 이를 동그란 종이 조각으로 만들었다. 이후 서신교환과 함께 동그란 종이 조각을 교환하며 변형해나간다. 종이 조각은 각자의 오브제 작업의 실루엣으로 작동한다. 협업의 과정이 완전히 끝나서야 드디어 종이 조각이란 실루엣 너머 서로의 오브제를 서로에게 공개했다. 결과물로서의 오브제(실루엣을 공유하는) 2 점과 함께 그들이 주고받은 서신과 종이 조각 기록들을 모은 책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물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나는 서신들을 준비된 쿠션에 앉아 곱씹어 읽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숨겨진 재미다. 11월 26일에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이현재 여성철학자(서울시립대 HK 교수)의 강연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이 4시부터 열린다. 전시는 1211일까지.


김영글, '해마 찾기'의 스틸 이미지. 싱글채널 비디오, 8분. 2016. (사진 = 케이크 갤러리)

이제, '공생 연구'. 토기, 바닷가로부터 온 나무. 2016. (사진 = 정희승)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다아트 TWITTER

더보기
  1. [전시 취재 요청]
    온/오프라인 프로젝트로…
  2. [전시 취재 요청]
    박장배 'Obsession…
  3.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도스 2020하반기 공…
  4. [전시 취재 요청]
    MoPS 삼청별관 《Port…
  5. [전시 취재 요청]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전…
  6. [전시 취재 요청]
    2020 하반기 갤러리도스…
  7. [전시 취재 요청]
    2020년도 금호창작스튜디…
  8. [전시 취재 요청]
    2020하반기 갤러리도스 공…
  9. [전시 취재 요청]
    2020하반기 공모전 '흐름…
  10.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도스 기획 김수진 '…
  11.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도스 기획 강민주 '…
  12.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 도스 기획 맹혜영…
  13. [전시 취재 요청]
    [누크갤러리] 강홍구, 유…
  14.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도스 기획 권지은…
  15. [전시 취재 요청]
    [금호미술관] 김보희 초…
  16. [기타 행사 보도 요청]
    [아트선재센터] 웹사이…
  17.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도스 기획 조재형 '…
  18. [전시 취재 요청]
    김희조 BYR : Prime El…
  19. [전시 취재 요청]
    2019 예비 전속작가제 결…
  20.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도스 기획 백신혜 '…
  21. [전시 취재 요청]
    갤러리도스 기획 이진아 '…

다아트 추천 동영상

William Kentridge, 'What Will Com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