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미투’ 시대에 니키 드 생팔을 다시 본다

다아트 김금영 기자 2018.07.06 08:56:57

‘사격 회화’ 연작 중 하나인 ‘붉은 마녀’. 상반신 중앙에 성모 마리아상, 왼쪽 다리에 아기의 오브제가 있고, 왼쪽 손은 여성의 성기로 향하고 있는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여성상을 표현한 작품이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 열풍이 거세다. 사회적 약자로 취급 받아왔던 여성의 인권 강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미투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가운데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뛰어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현대미술의 거장 니키 드 생팔의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예술의전당이 9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니키 드 생팔 전(展) 마즈다 컬렉션’을 연다. 이번 전시는 생전에 작가와 직접 교류한 일본 ‘니키 미술관’의 요코 마즈다 시즈에 전(前) 관장의 소장품 127점으로 꾸려졌다. 니키의 생전 작업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특히 ‘여성’ 작가로서의 니키에 주목한 게 특징이다.

 

‘사격 회화’ 연작은 물감이 담긴 오브제를 석고로 덮고 실제로 총을 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전해웅 예술의전당 예술사업 본부장은 “이번 전시를 2년 넘게 준비했다. 처음 전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며 “미투 운동을 비롯해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가 화두로 등장한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여성 작가로서 의미 있는 작품들을 남긴 니키를 통해 주어진 환경 내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유와 자신을 찾아가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니키의 작품은 그녀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니키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사격 회화’ 연작이다. 물감이 담긴 오브제를 석고로 덮고 실제로 총을 쏘아 제작한 작품들로, 1960년대 초 미국과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니키는 사격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나나’ 연작 중 ‘샘의 나나 - 백색의 춤추는 나나’가 설치된 모습. 유쾌하고 밝은 색채와 자유로워 보이는 여성의 몸짓이 인상적이다.(사진=김금영 기자)

다소 과격해 보이는 이 작품 제작의 배경엔 니키의 상처가 있다. 니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고, 18살 어린 나이에 결혼한 뒤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에 적응하지 못해 신경쇠약을 겪었다. 그리고 탄생한 작품이 ‘사격 회화’다. 니키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남성 중심적 환경에 의한 정신적 폭력을 고발했다.

 

‘사격 회화’ 연작 중 붉게 물든 ‘붉은 마녀’는 상반신 중앙에 성모 마리아상, 왼쪽 다리에 아기의 오브제가 있고, 왼쪽 손은 여성의 성기로 향하고 있는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여성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 여성상들을 향해 일제히 총을 쏘면서 ‘여자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시에 여성으로서 짊어진 아픔을 환기시켰다.

 

‘나나’ 연작은 니키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유분방한 여성이나 뚱뚱하고 다채로운 여성의 모습까지 활동감 넘치는 모습이 특징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이토록 아프고, 거칠고, 강렬했던 니키의 작업은 1965년 또 다른 대표 시리즈인 ‘나나(Nana)’로 이어지면서 한결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앞선 ‘사격 회화’ 연작에서 여성이기에 겪었던 억압을 표출했다면, ‘나나’ 연작에서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 자유분방한 여성이나 뚱뚱하고 다채로운 여성의 모습까지 활동감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샘의 나나 - 백색의 춤추는 나나’의 경우 컬러풀한 색상의 옷을 입은 여성이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을 담았다. 작가의 자화상이라고도 평가받는 이 작품은 내면의 분노를 직접 표출하는 단계를 넘어,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는 니키의 내면의 변화가 돋보인다. 또한 남성들이 가진 여성들에 대한 관념적인 미의식을 뒤집고, 여성의 존재 자체가 지닌 위대함과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한다.

 

니키(왼쪽)와 요코는 국적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눴다.(사진=김금영 기자)

 

분노 표출 ‘사격 회화’부터
자유로운 여성상 담은 ‘나나’까지

 

생전 니키가 요코에게 보낸 그림 편지들.(사진=김금영 기자)

스스로의 내면을 치유하기 시작한 니키는 이 영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끼치기 시작한다. 그 중 한 명이 이번 전시 작품들의 소장자였던 요코다. 스위스 조각가 장 팅겔리와의 교류를 통해 남녀 사이의 관계까지 관심을 넓힌 니키는 ‘연인에게 러브레터’라는 작품을 완성한다. 파란색과 핑크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채로 그린 여성의 몸과 손, 가슴, 그리고 얼굴 밑에 자신의 신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친다는 내용의 문장을 적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0년 일본의 한 화랑에서 요코의 눈에 띄었고, 이후 요코는 니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 ‘니키 드 생팔  x 요코 마즈다’를 집필한 쿠로이와 유키는 “일만 알았던 요코의 인생은 자유로운 여성의 모습을 담은 니키의 작품을 본 뒤 완전히 바뀌었다. 니키의 작품을 보고 위로받고 자신의 삶에 자신감을 얻은 요코는 니키의 작품을 수집하고, 니키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졌다”고 말했다.

 

니키가 구상했던 ‘니키 미술관’ 초기 구상 모형이 맨 오른쪽에 설치됐다. 직선이 없이 곡선으로 이뤄진 형태와 화려한 색채가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여성으로서 각자의 힘든 삶을 이어 왔던 요코와 니키는 서로에게 위로를 받으며 우정을 쌓았다. 두 사람이 나눴던 왕복 서한만 해도 500여 통에 이르는데, 이번 전시에서 니키가 요코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그림 편지’를 볼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친구를 얻은 니키의 작품은 이 시기 더 돋보인다. 특히 요코와 니키 두 사람 모두의 꿈이었던 니키 미술관의 초기 구상 모형은 기발한 상상력이 인상적이다. 실질적으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부드러운 곡선에 아름다운 색채를 담고 있는 이  모형은 당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본 니키의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요코의 초대로 일본을 방문한 니키가 교토의 한 사원에서 본 부처상에 강한 인상을 받고 제작한 ‘부처’가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부처’도 눈길을 끈다. 요코의 초대로 일본을 방문한 니키가 교토의 한 사원에서 본 부처상에 강한 인상을 받고 제작한 작품이다. 친분에서 시작된 교류가 니키의 작업 세계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리고 니키는 대중을 위로하는 조각 공원 ‘타로 공원’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한다. 신화와 전설을 혼합한 상상력으로 지어낸 타로 공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기쁨을 제공했다. 개인적인 상처에서 시작됐던 니키의 작업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교류로 이어졌고, 마침내는 2002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데 이르렀다.

 

니키는 197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사망할 때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해 조각 공원 ‘타로 공원’을 남겼다. 타로 공원과 관련된 작품들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쿠로이와 유키는 “니키와 요코는 병약하고 지병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신체는 약했을지언정 그럼에도 둘은 자신들의 삶을 생기 넘치게 살아가기 위해 애썼고, 그 뜨거운 마음은 성별도 나라도 종교도 초월했다”며 “지금 세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혼돈스러워지고 있지만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니키가 남긴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와 닿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생전 요코는 언제나 말했다. '니키의 작품은 니키 자신의 역사이자 요코 나 자신의 주제이며, 또 모든 여성의 보편적인 주제'라고, 또 '나는 니키를 만나고 용기를 얻어 자유로워지고 바뀔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은 상처 받은 여성들이 한 명이라도 니키의 작품을 알고 자신답게 살아도 좋다고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라며, 그것을 위해 작품을 수집했다고 말했다”라며 “두 멋지고 굉장한 여성들의 삶을 보고 용기를 얻어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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