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트 안용호 기자 2025.06.02 15:56:19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해외 뉴미디어 소장품을 소개하는 MMCA 소장품 《아더랜드 II: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를 오는 6월 3일(화)부터 8월 17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아더랜드 II: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는 국제적 명성의 뉴미디어 작가인 와엘 샤키와 아크람 자타리 2인의 대표작 2점을 소개한다. 와엘 샤키의 <드라마 1882>(2024)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의 화제작으로 손꼽혔던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국제적인 미술전문지 『아트 리뷰』가 선정한 ‘2024년 파워 100인’ 중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크람 자타리의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2013) 역시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레바논관 개인전을 통해 소개된 작품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 2점은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소개된다.
와엘 샤키(Wael Shawky)와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탐구하고 그것을 재해석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역사적 주제를 다루는 현대미술가들의 태도와 그것이 반영된 동시대 뉴미디어 미술의 특징을 소개하고자 마련되었다. 전시명인 아더랜드는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세계’를 뜻하는데, 두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 실제와 허구가 혼재되며 만들어진 다층적인 공간과 이야기 세계를 뜻한다.
와엘 샤키(b. 1971~)는 이집트 출신 작가로 중동 지역의 역사와 신화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작가가 감독이자 극본가, 작곡가, 아트디렉터로 참여한 <드라마 1882>(2024)는 회화, 조각, 설치, 공연, 영상 등 복합적인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여 온 와엘 샤키의 작품 경향을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드라마 1882>는 이집트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우라비 혁명’을 다룬다. ‘우라비 혁명’은 19세기 말 수에즈 운하 건설을 계기로 프랑스와 영국이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벌어진 이집트의 민족주의 저항 운동으로 영국이 이를 무력 진압하면서 이집트는 1956년까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우라비 혁명은 서구 역사가들에 의해 실패한 혁명으로 정의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이를 이집트 민족주의 운동의 시초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와엘 샤키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8장의 오페라 형식을 빌어 우라비 혁명을 재조명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간 서구 역사가들의 관점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온 우라비 혁명사가 객관적인 것인지, 제국주의 시기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회화, 조각, 설치미술로 보이는 작품 속 다채로운 배경과 서구 열강에 의해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당했던 제국주의 시기 이집트인들을 연상시키는 슬로우모션 연기가 눈여겨볼 만하다. 작품은 약 48분 길이로 10시 30분부터 17시 30분까지 매 시 30분에 상영 시작한다.(일일 7회)
아크람 자타리(b. 1966~)는 레바논 출신의 뉴미디어 작가이자 중동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이다.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2013)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1982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하며 작가의 고향인 레바논의 사이다 시에는 이스라엘 조종사가 학교 폭격 명령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확산되었다. 이 학교는 작가의 아버지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남자 중등학교였다. ‘이스라엘 조종사는 왜 명령을 거부했을까?’라는 질문은 작가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내내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2012년에는 이 소문의 내용이 포함된 책을 출간했는데, 이를 계기로 작가는 그 소문이 허구가 아닌 실제의 사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실존 인물인 조종사와도 직접 만나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 바로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제 2차 세계대전 중 가상의 독일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인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차용했다. 아크람 자타리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적대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 두 사람이 갈등과 대립을 넘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가치를 지킬 것인지를 주제로 나눈 가상의 혹은 실제의 대화를 반영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책 외에도 이 작품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샹송이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해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레바논의 독특한 문화적 특수성을 살펴볼 수 있다.
와엘 샤키와 아크람 자타리의 두 작품은 각각 오페라와 영화 형식의 작품으로, 작품의 몰입도를 위해 과천관 1원형전시실에 특별한 공간을 조성했다. 오페라 극장에서 사용되는 커튼을 포함하여 조명, 좌석 등 관람객들에게 실제 오페라나 영화를 관람하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아크람 자타리의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는 작가 본인을 연상시키는 레바논 소년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영상‘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폭격 당한 도시의 사진으로 전쟁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1982년 6월 6일, 사이다’라는 두 편의 영상 사이에 극장식 의자가 배치되며, 영상과 조명이 연동되어 실제 영화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뉴미디어 소장품의 국제적인 스펙트럼을 확인하는 기회”라며, “해외 소장품 수집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국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와엘 샤키의 <드라마 1882>는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의 기증을 통해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수증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는 2011년 기업CEO들을 중심으로 발족한 단체로 기증, 전시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발전을 후원하고 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