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건축과 사진,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다

고은사진미술관 요세프 슐츠, 파올로 벤투라

다아트 천수림(사진비평) 기자 2025.06.02 15:56:36

요세프 슐츠, 파올로 벤투라 2인전 전시장 전경. 이미지 제공=고은사진미술관

사진과 건축은 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독일사진가 요제프 슐츠는 산업구조물을 촬영한 후 환경적 요소를 지운 후 본질을 남기는 방식으로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탄생시켰다. 또 다른 이탈리아 사진가 파올로 벤투라는 밀라노를 배경으로 연극적이고 서사적인 사진작업을 통해 상상의 도시를 구축한다. 흥미롭게도 이 두 작가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혀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요세프 슐츠, ‘사실적인’과 ‘형태’ 시리즈

요세프 슐츠, '블루 오렌지(Blau Orange)'. 131x100cm, 2009. ⓒ Josef Schulz. 이미지 제공=고은사진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에서 8월 8일까지 열리는 독일 출신 사진가 요세프 슐츠, 이탈리아 사진가 파올로 벤투라의 2인전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전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전시명은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사진가가 ‘도시와 건축’이라는 공통된 테마를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풀어낸 사진과 영상작업을 선보인다.

‘두 도시 이야기’는 소설 속 파리와 런던이라는 두 개의 도시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찰스 디킨스의 요세프 슐츠와 파올로 벤투라는 ‘도시’와 ‘건축’이라는 공통된 개념에 접근하면서도 각자의 역사적 배경과 사진을 다루는 실험적 접근으로 도시 풍경을 기록했다.

요세프 슐츠, '형태(Form) 26'. 120x164cm, 2009. ⓒ Josef Schulz. 이미지 제공=고은사진미술관

마치 컨테이너처럼 보이는 ‘사실적인(Sachliches)’, ‘형태(Formen)’ 사진 시리즈는 실제로는 건물의 특징이 제거된 구조물이 등장한다. 공장, 창고와 같은 각 건물은 실제 용도를 알 수 없도록 하나의 조각처럼 탄생된다. 이때 공간은 장소로서의 특성을 벗어난다.

 

작가는 단일 유형의 산업 구조물의 변형을 촬영한 베른트와 힐라 베처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작가는 촬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포토샵을 통해 과거의 상징적인 건물을 변형해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작가가 촬영할 당시 이런 산업구조물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대량생산됐다. 콘크리트 슬라브와 골판지 등 값싼 건축자재로 구성됐다.

 

작가는 공장, 창고와 같은 산업 구조물을 촬영한 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창문이나 간판 등 기능적 요소와 시간의 흔적이 드러나는 환경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이 본질적인 형태만 남은 이 새로운 이미지는 기존 장소성은 제거되고 새로운 맥락에 놓인다. 슐츠는 사진의 기록적인 행위에 자신의 시각적 상상으로 이루어진 구성물을 통해 사진과 회화의 경계 사이에 위치시킨다.

요세프 슐츠, '벽돌(Ziegel)'. 100x130cm, 2003. ⓒ Josef Schulz. 이미지 제공=고은사진미술관

‘사인 아웃(Sign Out)’은 ‘사실적인’, ‘형태’ 시리즈보다 훨씬 단순하며 색감이 부각된다. 작가는 미국의 광고판을 촬영한 후, 텍스트와 로고를 제거했다. 빈 광고판은 마치 말풍선처럼 남아 미국 대공황 이후의 풍경처럼 어려운 경제위기 시절을 반추한다. 사인 아웃은 로그아웃을 의미하는데 특히 경제 위기를 겪는 상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소비주의 이면의 공허한 세계는 오히려 화려한 색채 뒤에 숨어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을 건넨다.

작가는 마치 화가의 붓처럼 카메라를 활용한다. 도심 외곽에 자리 잡은 물류센터, 판매창고 등으로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간판이나 문자, 창문, 식물의 흔적, 풍화된 후의 흔적들에서 연상되는 노스탤지어는 제거된다.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오로지 형태와 색감만 남는다. 아늑함이 사라진 이 장소들은 서늘해야 마땅하나 특유의 파스텔톤 색감 덕분에 이런 감정은 유보된다.

파올로 벤투라, ‘존재하지 않는 세계’

파올로 벤투라, 'NUOVIacrobatiGENnero'. 154,5x119,5cm. ⓒ Paolo Ventura. 이미지 제공=고은사진미술관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 당시 민주주의와 귀족주의 원칙 사이의 갈등을 해부한 소설이다. ‘강렬하게 차가운 안개가 ‘악령처럼’ 대지를 뒤덮고 있다‘는 소설 속 구절은 여전히 회자되며 사랑을 받고 있다. 역사적 스케일이 장대한 작품은 개인과 정치가 어떻게 결합하는지, 폭력의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있다.

파올로 벤투라는 이번 전시에서 사진, 회화, 콜라주 등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해 밀라노 건축의 시각적 역사를 구성한 작품을 선보인다.

벤투라는 2012년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어젯밤, 뉴욕 갤러리에서 소책자 ‘미래주의 화가’를 발표했어. 겨울 내내 앙기아리에서 마지막 작업으로 다닐로 몬타나리와 함께 만든 소규모 프로젝트야. 고작 여덟 장의 사진뿐이지만 내가 집착적으로 탐구해온 주제들을 담고 있어-제1차 세계대전, 회화, 그리고 병장의 테마들 같은.”

파올로 벤투라, 'Milano4_08'. 120x160cm. ⓒ Paolo Ventura. 이미지 제공=고은사진미술관

벤투라는 남북전쟁 연작에서 미국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유물을 다룬 후 ‘전쟁 기념품’ 연작을 내놓았는데 이처럼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사진에 담은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이후 실재하는 풍경과 가상의 도시, 병사, 광대의 이미지가 뒤섞인 ‘겨울 이야기’는 벤투라 특유의 환상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연작이다. 작가는 스스로 피사체가 돼 작품 속 등장인물로 나타나곤 한다. 자신 뿐 아니라 쌍둥이 형제, 아내, 아들도 등장한 이 이미지들은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드로잉과 섞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어디인지 이 인물들은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밀라노-추상적 투영(Milano proiezioni astratte)’ 연작에서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프린트한 다음, 작은 붓과 몇 가지 색의 물감으로 필요없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을 덧칠한다. 그러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이 떠오른다. 마치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되고, 정적인 무대세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올로 벤투라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탈리아 밀라노를 배경으로 연극적이고 서사적인 사진을 제작해왔다.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에 인물이나 자동차 등을 지우거나 미니어처 세트를 직접 제작하고 건축물을 촬영한 후 그림을 그린다. 이때 특정한 요소를 삭제하거나 강조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재구성된 도시의 시간은 정지된다. 작가는 도시구조를 새롭게 시각화해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든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촬영한 사진을 프린트한 다음, 작은 붓과 몇가지 색의 물감으로 필요없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을 덧칠한다. 그러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이 떠오른다. 마치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정적인 무대 세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올로 벤투라, 'NUOVIacrobati2Dic'. 154,5x118,5cm. ⓒ Paolo Ventura. 이미지 제공=고은사진미술관

‘밀라노: 추상적 투영’은 20세기 이탈리아 역사와 신사실주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의 작업방식은 인쇄된 사진으로 시작된다. 벤투라는 페인팅을 통해 이미지를 생략하고 강조해 사람이 없는 초현실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오래된 도심 풍경은 잃어버린 향수를 자극한다. 작가는 이런 도시의 초상화를 통해 알 수 없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수백 개의 케이블과 전선이 교차하는 밀라노의 도심은 벤투라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광대처럼, 도시도 마치 인형처럼 묶여 있다. 회색 톤의 가라앉은 색채에서 풍기는 서늘하고 쓸쓸한 공간에 건물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포즈, 광대 특유의 블랙유머로 대표되는 서사성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타타르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와 베네치아에서 온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의 대화가 이뤄진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마르코 폴로가 들려준 55개의 도시 공간은 우리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노쇠한 황제 쿠빌라이 칸은 마르코 폴로로부터 제국의 곳곳의 실상을 듣는다. 그가 한 번도 직접 가보지 못한 영토들은 흥겹거나 쇠락하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한 모습을 지녔다.

이 가상의 도시들은 현실 속에 있을 법하지만 실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이어지는 가상의 도시는 무수한 형태들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듯 닮은 도시들은 기하학적이며 유기적이다. 각각의 도시들은 인간의 기억, 인간의 욕망, 기호, 이름, 죽음 등이 등장한다. 도시에 관한 소설이지만 인간의 역사가 쌓여 있는 일종의 이력서인 것처럼 두 작가 역시 보이지 않는 도시의 초상을 그리는 작가다.

<작가 소개>

요세프 슐츠(Josef Schulz, b.1966~)는 폴란드 비쇼프스부르크 출생으로 현재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와 토마스 루프에게 사사받았다. 이후, 세계 각곳에서 다수의 전시를 열었고, 컨택트 사진제 (토론토), FIF사진제 (벨루오리존치), 핑야오국제사진제(핑야오), 비에날쉬르2021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많은 사진제에도 참가한 이력이 있다. 2001년 유럽 건축 사진상을 수상했고 그 외에도 ZF-쿨투어슈티프퉁 프리드리히스하펜 기금, 슈티프퉁 쿤스트폰즈 2021 장학금, 프랑스 아를 부아즈 오프 사진제, 시티 아티스트 NRW 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UBS, 독일 연방의회, 카를스루에, 도이체 뵈르제, FRAC 등 세계 유수의 컬렉션에 포함돼 있다.

파올로 벤투라(Paolo Ventura, b.1968~)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접 제작한 정교한 세트를 활용해 몰입형 작품을 만든다. 프랑스 아를 르콩트르 국제 사진 미술관, 파리 메종 유로피안 사진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한 이력이 있고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관 전시에도 참가했다. 작품은 보스턴 미술관, 미국 의회도서관 등 세계의 유명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주요 저서로 ‘전쟁 기념품’(2006), ‘겨울 이야기’(2009), ‘오토마톤’(2012), ‘단편집’(2016), ‘격리 일기’(2020), ‘파올로 벤투라: 사진과 드로잉’(2020), ‘사기꾼의 자서전’(2021), ‘밀라노, 추상적 투영’(2024)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어린이 도서도 출간했다.

글: 천수림
이미지 제공: 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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